얼마 전까지는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낯선 풍경, 낯선 거리, 길거리엔 주인 없는 개들이 어슬렁 거렸고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도움도 청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하릴없이 밖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무해하다고 인식되고 나서부터 이 동네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무반 단지 정문을 나와 왼쪽 찻 길을 따라 가면 눈 꼬리가 쳐져 슬퍼보이는 할머니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세탁소가 있고 그 옆엔 얄궂은 담배 따위 등 잡동사니들을 파는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나가면 항상 뭔가 분주해 보이는 아저씨가 있는 세차장, 맞은편에는 밖에서 볼 때는 문 닫은 것 같이 어두워도 가보면 항상 영업을 하고 있는 에너지가 넘쳐보이는 미용사가 있는 미용실이 있다.
나도 남부럽지 않은 길치라 처음엔 길을 나서면 구글 지도부터 켰지만 며칠이 지나자 지도 없이도 ‘그 거리의 느낌’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머리로 기억하기보다 몸으로 익히는 방향 감각. 그게 생기기 시작한 후부터 도시도 사람도 눈에 더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곳의 사람들은 항상 웃는다.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좋은 옷을 입고 있지 않아도 작은 가게에 위태롭게 쪼그려 앉아 초라한 식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눈이 마주치면 항상 미소를 잊지 않는다.
한 두 번만 찾아가도 단골이 된다. 살갑게 대하고 배려해주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 부부가 자주 찾는 커피숍 직원들은 이젠 주문대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노슈가 원, 카모마일 티 원."
이렇게 말하고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면 자신도 뿌듯한 듯 수줍게 웃는다.
치앙마이에서는 언어로 소통하는 것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의사소통 수단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 리듬으로 전해지는 것들이 말로 전해지는 것보다 더 많다.
무엇인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단순히 외우고 익숙해 지는 것 뿐만아니라 나만의 리듬이 생기는 것이었다.
시간도 그랬다.
처음엔 하루가 너무 길고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하루가 짧고, 일주일은 순식간이다.
익숙함이라는 루틴이 생기면서 시간은 짧아져갔다.
치앙마이라는 도시의 얼굴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따뜻하고 비 오는 날에는 왠지 꼭 창을 열고 싶어지는
느린 도시의 온기를 닮았다.
어느 날, 큰아이가 물었다.
“아빠, 우리 언제 한국 가?”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 아직은 생각 안 해봤네. 여기도 나쁘지 않지?”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나 여기 좋아.” 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이 도시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선물 같았다.
낯설었던 것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장소와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연결은 지도나 검색이 아니라 살아낸 날들 속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