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더 단단한 가족이 되어간다

치앙마이에서 발견한 가족의 의미

by 쓰니파파
커버이미지(좀티엔해변).JPEG

익숙한 알람 소리가 잠을 베어내면 우리는 각자의 전선으로 흩어졌다.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회사로, 늦잠을 자면 온 집안이 날카로워졌다. 서로 말을 섞을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출근길 늘어선 차 들은 모두 비슷했다. 피곤하고 급했다.

치앙마이의 아침은 둔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 밥을 먹는 동안 집안에는 웃음이 흐른다. 막내의 어린 농담에 가족들은 크게 웃는다. 막내가 어제와 똑같은 말을 또 묻는다. "오늘은 뭐 해?" 이 질문을 치앙마이에서 가장 많이 들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화를 냈다. "이건 왜 이렇게 안 해?" "한국에서는 안 이랬잖아." "내가 다 알아볼게, 당신은 그냥 쉬어."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함을 강요했다. 평생을 몸으로 체득한 한국에서의 방식을 이 땅에서도 그대로 펼치려 했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쌀이 달랐고 길이 달랐다. 비자와 학교 서류는 누구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역할이 칼로 자른 듯 나뉘어 있었다. 아빠는 출근, 엄마는 육아, 아이들은 학교. 여기서는 경계가 흐려졌다. 거의 모든 일을 온 가족이 힘을 합쳐해냈다. 더 의논하고 더 약속했다. 서로에 대해 믿음이 커졌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가족이었다. 같은 지붕 아래 살았다. 그런데 서로를 얼마나 보지 않고 지나쳤는지 이제야 알았다. 각자의 시계에 쫓기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가장 적게 말했다.

낯선 곳에서는 감정도 낯설어진다. 울컥하는 순간이 오면 아이들도 날카로워진다. 작은 다툼이 잦아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 빨리 화해했다. 더 자주 안았다. 이것이 이국에서 가족이 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서로의 다름을 견디며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것. 가족이라는 말이 혈연의 이름이 아니라 매일 서로를 선택하는 일임을 여기서 배웠다. 치앙마이의 느린 아침 속에서, 둘째의 단순한 질문 속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단단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가 여기 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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