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치앙마이 학교 생활
"친구들은 좀 생겼니?"
조심스럽지만 약간의 기대를 갖고 물었다. 한 달 남짓. 벌써 영어를 유창하게 하길 기대한 것은 아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학교 생활을 하는 아이가 항상 안쓰러워 마음이 쓰인다.
"응, 애들하고 친해. 오늘 영어 수업 시간에 발표도 했어!"
아이가 말했다. 별 기대 없이 물었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 눈씨울이 흐려졌다.
처음 학교에 데려다주던 날이 기억난다.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교문 앞에 섰다. 교복이 낯설었다. 외국인 선생님들이 있었다. 영어 안내 방송이 들린다. 모든 것이 이질적이다.
아이들은 내 손을 놓고 들어갔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생각했다. 너무 무리한 선택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한 달이 되고 아침마다 울먹이던 아이들이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학교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늘었다. 시작은 작은 것들이었다. 한 명의 친구. 수업 시간에 발표한 한 문장. 점심시간에 나눠 먹은 과자. 말이 안 통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이들은 스스로 배웠다.
한국에서라면 매일 학원에 쫓겨 갔을 것이다. 억지로 영어를 배웠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영어를 써야만 한다. 환경이 그렇다. 아이들은 살면서 배웠다.
틀려도 괜찮았다. 몰라도 괜찮았다. 그런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영어보다 자신감이 먼저 커졌다.
더 어린 둘째는 처음에 영어가 하나도 안 들린다고 했다. 지금은 선생님의 농담에 웃는다.
"어떻게 알아들었어?"
"그냥 느낌이 와요."
아이가 대답한다. 아이들은 언어보다 분위기를 먼저 이해한다. 공부보다 관계를 먼저 배운다. 정답을 외우는 대신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치앙마이의 학교는 줄 세우기 대신 각자의 속도로 따라가도록 기다려주었다. 교육 방식이 그랬다. 한국과 달랐다.
아이들이 점점 더 밝아졌다. 자유로워졌다. 나는 안도했다. 이 선택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소외감을 느낀다. 태국어 수업은 어려워하며 의기소침하기도 한다. 그런 날들조차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극복한 경험으로 남는다.
그 경험이 한국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면의 단단함으로 자라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