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정리해두는 마음들...

by 쓰니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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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비행기 표를 예매한 것도 아니고, 짐을 싸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부부는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정리하는 건 아니다. 마음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하루하루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모든 순간이 조금 더 선명하고, 깊고, 의미 있어졌다. 끝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오히려 시작처럼 느껴지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아침 8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줄 때 늘 다니던 그 골목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햇빛이 드리우는 야자수 그림자, 커다란 개가 느긋하게 누워 있는 거리, 익숙해진 치앙마이의 냄새. "이 장면도 언젠간 그리워지겠지." 그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품은 채 우리는 똑같은 길을 매일 다르게 느끼며 걷는다.

단골 식당에서 "Same same?" 하고 웃으며 물어보는 아주머니의 얼굴도, 자주 가는 카페 창가 자리도, 헬스장 러닝머신 앞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창밖 풍경도 이젠 우리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언젠가는 두고 가야 한다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을 더 '의식적으로' 살아가려 한다. 같은 점심 메뉴라도 "오늘은 좀 더 천천히 먹자." 같은 산책길이라도 "여기서 사진 한 장 남기자." 조금은 애잔하고 조금은 담담하게 우리는 기억이 될 현재를 살고 있다.

시간의 유한함을 아는 것이 이렇게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걸 몰랐다.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이 오히려 머무르는 시간을 더 깊게 만들어준다.

아내와 나는 요즘 종종 작은 노트에 메모를 한다. '치앙마이에서 배운 것들', '제주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쉼이 주는 의미는 뭘까?', '다음엔 꼭 해보고 싶은 것', '다시 돌아온다면 하고 싶은 일'.

이 노트는 어쩌면 우리 가족의 다음 챕터로 가는 다리를 놓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경험을 지혜로 바꾸는 작업, 추억을 미래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할까.

아직은 돌아갈 준비가 안 됐지만 돌아가지 않을 수는 없는 시간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순된 감정 속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저항이 아니라 수용이다.

그래서 이별이 다가올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자주 웃고, 더 깊이 살아보려 한다. 마치 한정된 시간이 주는 선물을 제대로 받아내려는 것처럼.

언젠가 다시 짐을 싸는 날이 오면 이 시간을 '미련'이 아니라 '감사'로 남기고 싶다. 떠남이 슬픔이 아니라 완성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도 마음을 천천히 정리해간다.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고, 모든 머무름에는 떠남이 있다. 그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삶을 사는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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