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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노키 Nov 03. 2021

이제야 향수를 입어보네요

아홉수에 발견한 취향

  아침 8시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찬 2호선에 탔을 때, 내 앞에 선 낯선 사람의 향이 싫었다. 누군가의 게으름에 지워지지 않은 땀 냄새를 가리겠다고 무자비하게 걸친 향이 싫었다. 그런 강한 향을 맡았을 때 오히려 담배 냄새가 낫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향수를 왜 뿌리지? 향수를 좋아했던 남자 친구(지금은 남편이 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좋아하는 향이 남들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내 생일에 대학교 친구들이 사고 싶은 생일 선물을 사라고 돈을 모아 줬다. 생일 한 달 전부터 무얼 사면 좋을지 틈만 나면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물욕이 별로 없는 내가 고르는 선물이라곤 예산에 비해 턱없이 저렴하거나 책상에 올려두고 먼지만 쌓일 것들이었던지라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 친구는 조심스레 향수 가게를 구경 가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데이트 코스에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다. 선물 좀 고르라고 재촉하는 친구들의 등살이 버거워질 즈음 남자 친구와 가로수길로 향했다. 


  가로수길에는 '르라보'라는 작은 향수 가게가 있었다. 마스크를 써서 그런지 생각보다 지독한 향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시향을 도와주는 직원 두 명이 손님들과 바쁘게 눈 맞추며 응대하고 있었다. 작은 규모에 비해 방문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아 브랜드의 인기를 알 수 있었다. 어벙하게 서 있는데 직원이 향수 취향을 물어왔다. 향에 대한 취향이 없었던 나는 어디선가, 누군가가 우드 계열의 향이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고 우드 계열의 향수를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직원은 세 개의 향수를 시향지에 뿌려 건네주었다. 그중 하나의 시향지에 뿌려진 향은 자연의 냄새가 교묘하게 섞여 흙냄새 같기도 하고, 나무 냄새 같기도 한 게 신기하게도 너무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향수를 뿌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향수를 잘 뿌리고 다닐까?'

  확신을 가지고 향수를 사고 싶었다. 내가 향수 뿌리는 것을 싫어했던 건 누군가에게는 내가 뿌린 향수가 지독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향수를 사기 전에 두어 번 더 가게에 들러 신중하게 향을 골랐고, 드디어 생일 선물을 사게 되었다.




  




  9개월 동안 열심히 향수를 뿌리고 다니며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일단, 향수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 우연히 바람이 불었을 때, 내가 움직였을 때 나는 향이 좋다. 작정하고 맡는 것이 아니라 불현듯 향이 스쳐가는 것이 느껴질 때 즐겁다. 나도 우드 계열의 향수를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향수를 살 때만큼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도 불편하니 남들도 그러지 않을까'하는 어설프고도 요상한 배려심 때문에 나는 내 향수 취향도 모르고 살아갈 뻔했다. 사실 이건 향수가 아니고도 그렇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남들 눈치는 조금 덜 보고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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