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울 엄마
올해 9월 결혼식을 올렸다. 좋은 기회로 같이 살 집을 먼저 구하게 되어 식을 올리기 몇 개월 전 혼인신고를 하고 남편과 함께 살기로 했다. 신혼집은 초등학교 때부터 살았던 우리 집과 차를 타고 불과 15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드디어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에 들어선다는 들뜬 마음에 이사하기 전 주말마다 신혼집을 밖에서라도 구경하기 위해 찾아갔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기간은 고작 6개월, 프랑스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뿐이었다. 살아왔던 모든 일상에 부모님과 동생이 있었다. 며칠, 몇 개월 동안 여행을 가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행복한 일이 있을 때도, 슬픈 일이 있을 때도 돌아온 집은 항상 북적거렸고 내 기분은 금세 중화되어 평정심을 찾곤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집을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께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과하게 보호를 받는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덕에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자라왔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통금시간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울타리 속에서 점점 답답함이 커지면서 '결혼'을 통해 부모님의 보호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었다. 결국 그 '로망'을 실현하게 되다니! 신혼집으로 이사하면 영영 부모님의 집을 떠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결혼하고 가족들과 살던 집을 떠나기 전에 서운한 마음에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던데.. 신혼집으로 이사하기 전날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잠을 너무 잘 자고 말았다. 눈을 뜨니 이삿날 당일이었고, 이삿짐을 옮기느라 서운하거나 서글픈 마음이 올라올 여유가 없었다.
아침 일찍 시작했던 이사가 오후 5시쯤 끝이 났다. 부모님은 일찍 퇴근하시고 신혼집으로 오셔서 남은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셨다. 어떻게 신혼집으로 보내냐고 걱정하시던 부모님은 생각보다 씩씩하셨다. 신혼집에서 저녁을 먹고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가셨다. 낯선 장면이었다.
지친 몸으로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평소 연락에 서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일부러 의식하여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잘 있지?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네. 그래서 전화해봤어. 잘 자!'
아빠의 전화를 받고 놀란 마음에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바꿔달라고 하려 했지만 아빠는 전화가 쑥스러운지 급히 끊어버렸다.) 신호음이 가고 엄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정말 괜찮았는데,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한참 전화를 붙잡고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듯 엄마와 같이 울었다. 엄마는 집에 돌아가 비어있는 나의 방을 보니 내가 자라왔던 순간들이 후루룩 지나가며 허전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둘 다 어느 정도 감정이 진정되자 엄마는 눈물 섞인 축복을 해줬다.
'행복하게 살아. 알았지?'
이제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 남편과 함께 산지 반년이 조금 넘었다.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있다. 나도 새로운 둥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지. 부모님이 해주셨던 것들을 앞으로는 남편과 둘이 해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오늘따라 나를 안아주던 작은 방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