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살의 난 두 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던 스물아홉의 난 코로나와 함께 결혼식을 올렸다. 코로나 시국에 이렇게 호로록 결혼식을 진행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는 경계가 희미해진 네 개의 계절을 함께 연애하고 나서야 결혼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복이 많게도 같이 살아갈 집이 먼저 해결되었다. 그 후 <결혼 준비하기>라는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신속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하나씩 해치워 나갔다. 양가 어르신들을 부산에서 모시고 상견례를 치렀고 서울에서 예식장을 돌며 우리의 조건과 맞는 곳을 찾아 나갔다.
우리가 원하는 예식장의 조건은 뚜렷했다. 첫 번째는 적은 인원을 초대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부산에서 시댁 분들이 올라오시기 좋은 위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웨딩 플래너 없이 우리 두 명이 주말마다 발로 뛰어 알아보기엔 여간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두 가지 조건에 맞는 예식장을 찾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일정에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5주쯤 돌았을 때 우리는 딱 맞는 예식장을 찾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약 1년 뒤 결혼식을 계약하게 되었다.
1년에서 6개월, 3개월.. 결혼식 일정은 점점 다가오는데 백신도 나왔다던 코로나는 좀처럼 잠식되지 않더라. 결혼식이 4주쯤 남았을 때 서울은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된다고 발표되었다. 콘서트는 2,000명 수용이 가능하다는데 결혼식은 49명까지만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기준에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계속 거리두기 4단계 방침이 연장된다면 오기로라도 결혼식을 미루는 것이 맞았다.
예식장에서 전화가 왔다.
'1부, 2부 나눠서 예식을 올릴 수 있어요.'
거리두기 조정에 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예식장도 고민이 많았을 터였다. 그 고민 끝에 신랑, 신부들에게 예식 2부를 진행하고 한 부에 49명씩 총 98명을 초대할 수 있다고 제안을 돌리는 것이었다.
꽉 막혔던 상황이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기회로 돌아선 제안이었다. 적은 인원으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기에 규모도 적당했고, 예식장의 1층, 4층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다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에 두 번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날씨 요정이 도왔는지 전날까지 오던 비는 그치고 정말 화창한 하루였다. 결혼식을 두 번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더 정신없었다. 가족들과 친척, 부모님 손님들은 1부에, 우리 손님들은 2부에 모시고 식을 진행했다. 4층에서 1부, 1층에서 2부를 진행하니 왔다 갔다 하는 것에도 수고로움이 따랐고 1부 예식에 와주셨던 하객분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2부를 급히 진행해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후회가 남지 않는 결혼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결혼식에는 스토리가 새겨졌다. 장장 3시간 동안 결혼식을 두 번 올린 것만큼 잘 살아보자는 다짐도 덧붙여보았다. 이런 시국에 우리의 결혼식에 찾아와 준 하객분들에게도 정말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