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을 잠깐 잃어버리니 행복이 찾아왔다
Blessing in Disguise
내 친구 Cindy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이다. Cindy는 "Blessing in Disguise"문구를 인스타그램 소개 영역에, 동묘에서 산 청자켓 등 쪽에 적어놓았다. '변장한 축복'으로 변역 되는 이 영문을 처음 들었을 때 뜻을 세 번은 물어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작은 한숨을 한 번 쉬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착한 Cindy.
"지금 힘든 일은 나에게 찾아올 축복이 잠깐 변장했다는 뜻이야. 힘들었던 일이 결국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거지. 그러니 다 괜찮아."
필름 사진을 스캔하기 위해 친한 대학 동기 언니를 불러 같이 을지로에 갔다.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고 저녁을 먹으며 요즘 나의 상황을 늘어놓았다.
"회사 사정이 안 좋아 퇴사를 하게 될 것 같아. 제대로 꾸려놓은 포트폴리오도 없는데 나는 이제 뭐해 먹고살까. 인생이 뭐라고."
지난주에 남자 친구에게 프로포즈를 받고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는 언니에게 마음의 짐을 나눠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뺑소니차처럼 스쳐 지나갔다. 언니가 내 이야기로 인해 덩달아 우울해질까 봐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칭찬했다. 반지는 내 푸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언니의 행복한 이야깃거리였다.
저녁을 먹고 식당 길 건너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언니는 나에게 직접적인 위로의 말은 건네지 않았다. 대신 언니가 들은 더 안 좋은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일을 못해 해고된 직원의 부모가 직장으로 전화한 일, 우리 졸업발표회를 진행했던 후배가 자살한 일 등. 그에 비하면 난 나은 상황에 있는 것이니 힘을 내라는 뜻이었겠지.
카페 마감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지하철로 향했다. 개찰구 앞에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이런! 코트 주머니에 지갑이 없다. 서둘러 좀 전에 있던 카페에 전화를 했고, 그 사이 언니는 식당에 전화를 해주었다. 카페도, 식당도 들어온 분실물은 없다 한다. 아무리 술에 취한 경우에도 소지품을 잃어버리지 않는 나로선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지갑에 뭐가 있더라..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고, 신용카드를 분실 신고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하철 출구를 다시 올라갔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카페에서 앉아있던 자리를 보고 축구선수의 골 세레머니를 따라 할 뻔했다. 못 찾겠다 싶었던 지갑이 앉아있던 의자 구석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분실물이 없다고 대답했던 카페 알바생에게 서운함을 느낀 것은 잠시였다. 지갑을 주워 지하철을 타는 순간까지 어찌나 행복하던지! 행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우울할 때 말해! 내가 지갑 숨겨놨다가 언니가 못 찾을 것 같다 생각할 때 짠하고 보여줄게!"
잠깐 날 당황하게 하고 슬프게 했던 일이 이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게 하다니. 난 변장한 축복과 함께 살고 있구나.
마음이 어지럽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멋진 좌우명을 가진 친구와 우울한 내 옆을 지켜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큰 행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