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4 Instagram)
저는 SF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에요, 가장 오래 참여한 작품이 SF인 것 치고는 꽤 의외라고들 합니다.
뭐 꼭 [좋아하는 것 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아서 코난 도일처럼 애정 없는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우도 왕왕 있구요, (스텔라 블레이드에 애정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열 번 이상 읽은 책이나 열 번 이상 본 영화 등은 누군가를 꽤 잘 설명해준다고들 합니다.
저도 누군가가 저에게 책과 영화를 권하면서 '이걸 읽고 저걸 본다면 저에 대해 꽤 잘 알게 될 거에요' 라고 들은 경험이 몇 번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누군가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 뭐에요?' 라고 물어보면 로버트 F. 영의 SF 단편집 [민들레 소녀] 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물어보는 사람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지긴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이렇습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애니메이션 하나랑 라이트노벨 하나가 이 책의 단편 [민들레 소녀]의 대사 한줄을 샤라웃(...) 혹은 인용하면서 특정 장르에서의 인지도가 높아진 케이스입니다.
아무튼 로버트 F. 영의 단편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이 [이야기하는 주제] 때문입니다.
시간여행이 가능해지고, 성간 통신으로 은하와 은하 사이가 서울과 도쿄만큼 가까워지고, 인간의 속도가 빛을 뛰어넘은 배경이라면 여러분은 보편타당하게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거라고 생각하세요?
이상한 라플라스의 악마가 혹성에 떨어져서 환각 성분이 있는 우주 향신료를 독점하는 대 서사시?
물리법칙 위에 있는 어떤 신비한 힘으로 광선검을 휘두르면서 '성간 여행도 되는 시대에 뭘 하는거죠?' 라는 질문에 "낭만 뒤졌잖아 ㅋㅋ"라고 답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로버트 F. 영은 아쉽게도 그런 이야기꾼은 아니었나 봅니다, 시간 여행을 해서 우연히 만난 어린 아내에게 사랑에 다시 빠진다던가, 은퇴한 우주 비행사가 장장 3페이지동안 하늘을 그리워하는 내용 등이 전부입니다.
책 서문에 있는 추천사에서는 작가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 이라고 소개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나아갈수록 인간성은 점점 약해진다는 말이 왕왕 들리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인류가 빛과 시간을 거스를 수 있게 되고, 모든 엔트로피를 이해하고 우주 만물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42]라고 낸다고 해도 누군가는 바보같이 사랑에 빠지게 되겠죠.
이런 '인간다움' 은 소중한 것이라 지켜야 해!
가 아니라 '당연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니까 변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해주는 점에서 작가의 상냥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해석하거나 '인간찬가'라고 느낄수도 있겠네요.
저는 이런 상냥하고 낭만적인 것들이 역시 좋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씹덕계를 뒤집어놓았던(....) 마법같은 책의 한 문장을 남기고 말을 줄이겠습니다, 사진에도 나오는 말이네요.
'그저께는 토끼를, 어제는 사슴을, 그리고 오늘은 당신을 만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