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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농 Apr 03. 2017

박국희의 취직일기 1

본격 구직소설 - 김대호 아나운서는 취직이라도 잘했지.


  박국희의 취직일기 1

  

  "탄소소재가 어떻게 생겼길래 발로 차냐?" 정한이가 내 자소서를 보고, 한심한 듯 묻는다. 이 자식, 은근히 시니컬하다니까. 탄소소재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쓴 시를 자랑스럽게 내보였으나, 나는 '소질 없다'는 소리를 듣고 선 바로 구겨버렸다. '탄소소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가능성이었던 적 있었느냐.'로 시작되는 시였다. 괜찮지 않나?


  스물 여덟. 난 1년 간 회사생활을 마치고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이직'이라는 거창한 것을 가족과 동료에게 자랑하곤, 번번히 실패만 겪었다. 부귀영화를 위해 다니던 대학원도 그만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왜, 욕심만 많아서 이것 저것 하고 다녔는 지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심했다. 그냥 좋아서 시작한 건데, 금세 한계를 보였다. 지친다. 집안에선 맏이라 얼른 취업하고 나가라고 아우성인데, 아버지 한숨만 늘어간다. 취업하고, 얼른 여자친구랑 결혼 해야 지. 더 이상 작가니 뭐니 하는 '지망생' 직함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다 잡지 않으면, 어느덧 벌레 같은 악마들이 나를 언제 유혹할지 모른다.


  사실, 나는 꽤 많은 유혹을 받아왔고, 거기에 번번히 걸려 넘어졌었다. 첫번째는 아티스트의 악마였다. 래퍼가 되고 싶었다(게 했다. 그놈들이). 래퍼들만 쓴다는 콘센서 마이크도 비루한 실력인 주제에 고가에 구입하지 않았던가. 공연도 몇 번 서기도 했는 데, 결국 작업물 자체를 인정받지 못 했다. 쇼미더머니 나가는 것도 여러  번 고려 했었지만, 나가질 않았고(못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듯 하지만). 여튼, 결과가 안 좋았다. 그래, 결과가 안 좋은 모든 것들은 다 불살라버려야 한다. 그건 다 스크루테이프의 수작이다. 허튼 수작. 고놈들은 정말 똑똑하니까.  


  두번째는 밴드 베이시스트의 꿈이었다. 군대에서 나의 모든 것을 '베이시스트'로 도배했었다. 그땐 진짜 아티스트가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베이스 좀 친다고 말하고 다니면 되는 줄 알았다. 그냥 군인교회에서 연주 몇 번 할 수 있는 기회밖에 없었는데, 인디 밴드 멤버 몇 개월 한 것을 부풀려서 음악가처럼 하고 다녔다. 그래,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었지. 충분히 멍청했던 거다. 말년 병장들 기타나 조금 알려주고 군번이 풀린 것처럼 하고 다니다가, 그들이 전역하니까 군생활이 정말 힘들어지더라.


  음, 이건 여담이고. 어쨌든. 자, 세월아 네월아 하지 말고. 유혹을 벗어나고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 생각이 강박관념이 될 때까지 반복해야겠다. 직업한국은 내 친구. 인간인은 내 친구. 또 어디가 있더라. 워크넷도 있고. 정신차려, 박국희. 채용공고를 낸 기업들을 검색 하는데, 맘에 드는 기업들이 별로 없다. 아니, 기업 자체가 별로 없다. 지방에서 태어난 게 한심했다. 왜 이 지역엔 좋은 기업이 없는 건지.


  계속 살아온 이 지역에서 계속해서 살고 싶은 데, 직장이 없으니까 도대체 살 수가 없다. 수도권에만 몰려 있고. '침'을 뱉었다. 나는 침이다. 그 안에 담긴 의지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취직이라도 잘했지. 답답하다. 나, 면접 가서 침이라도 뱉어 볼까. /2017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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