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날의 이야기
4월 1일 : 면접 날의 이야기
어제, 빌립보서를 큰 소리로 통독하고 면접에 들어갔다. 나는 기쁨의 서신인 빌립보서를 참 좋아한다. 인생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고 싶다는 것도 빌립보서 말씀 중에서 따왔다. 이 말씀을 읽으며 묵상할 때마다 주 안에서 참 기쁨을 발견한다.
빌립보서에 담긴 구절들을 가사로 사용한 곡을 찬양하고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매번 다른 은혜를 받는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끝 날까지 이루실 거란 말씀을 통하여서 믿음의 견고함을 주셨다. 나는 푯대를 향하여,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또 기뻐했다. 주께서 예비하신 일이 바로 이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함께 하기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식으로 홀로 가는 게 익숙해진 사회다. 배려 정신과 공동체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상 속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내게 사회적경제는 협동과 연대의 정신을 회복시킬 운명적인 과업이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단 꿈이 있었고 지원한 직장은 안정적이고 사회적 명예도 보장됐다. 내 딴엔, 그 직장에 입사하기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염려도 덜어주셨고 기도와 간구로, 또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게 해주셨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흔들림 없었다.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나갔다고 믿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전하는 사랑을 충만히 느끼며 나아갔다. 모든 게 적당했다. 마치 잘 짜여 진 각본처럼 흠이 없었다. 날씨도 좋고, 불어오는 바람도 적절했고 그날따라 잠도 개운하게 잤다. 면접장도 깨끗하고 깔끔했으며 면접관들도 하나같이 호의적인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무참히 실패했다. 하나님께서는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나와 친했다. 그런 주님께서 왜 그러셨을까. 나의 기도를 외면하신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게 더 이상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실망감은 사라지는 듯 했다가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연인인 유미가 떠올랐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양가 부모님도 날짜만 잡지 않았지, 사실상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신 상태였다.
이번 면접만 잘 넘겼다면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었고 결혼도 할 수 있었다. 여러 조건들이 잘 준비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에 불과했다. 그토록 준비했던 면접을 멋지게 해냈음에도 최종합격자의 명단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불만을 표현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지원하고 싶은 직장도, 지원할 수 있는 직장도 없었다. 전 직장은 신규 직원들로 채워졌고, 동종의 타 직장들도 전부 채용을 마친 상태였다.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집으로 오던 길,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하나님을 원망했다.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소리쳤다가 힘에 부치면 말이 없어졌다가도 다시 소리치기를 반복했다.
가장 믿었고, 끝까지 믿은 분께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당신은 나를 묵묵히 응원해주지 않았습니까. 정장을 입은 나는 면접관에게 따지듯 하나님께 따졌다. 하나님께 당신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했던 나는 그 새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외려 들킨 마당에 그 마음을 뻔뻔하게 내비쳤다.
나를 버리실 작정입니까. 일전부터 이사야 6장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그루터기가 되기를 자발적으로 바라왔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왜 내 열심을 봐주시지 않나요. 하나님의 공동체를 살리는 일, 그게 제가 하려는 선한 일 아니었나요? 근데 그 일을 막으시다니요!
답을 주시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인간의 자만과 거만함은 감정의 흐름을 탔을 때, 종잡을 수 없는 곳까지 가곤 한다. 사춘기 소년이 부모님께 반항하듯 끝을 모르고 대들었다. 하나님도 실수를 하시는 군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나의 흥미를 최적으로 맞춘 아주 이상적인 직무였잖아요.
절망감 속에 운전대를 잡았다. 가장 속상해할 사람, 나의 연인을 만나러 가려고 차를 몰았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약속의 땅이라고 믿었던 소망의 근무지. 그 곳, 가기 싫은 그 땅으로 다시 가는 수밖에.
도착하고 10분이나 지났을까. 근무시간이 2시간이나 남았는데, 유미는 내게 되레 어디냐고 물었다. 네 직장 앞에 와있다고 짧게 답했다. 웬걸, 좋아할 줄 알았는데 무척 당황해했다. 내 상심함을 알았던 유미가 사정사정해서 반차를 내고, 나를 만나러 전주로 왔었던 거다.
이럴 수가. 놀라면서도 너무 감사했다. ‘주여, 이런 짝을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위로를 주시는 군요.’ 슬프고 낙담했지만, 그 마음을 그녀에게 결코 내보이지 않았다. 감사함으로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완악했던 마음은 봄을 만난 듯 녹아내렸고 이내 기쁜 마음으로 전주로 달려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인고의 시간이 끝나기를 바랐다. 아가서의 고백처럼, 언젠간 내가 당신에게 멋진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어느 때까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테니까 무엇이든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부족한 나지만 당신은 항상 내가 멋지다고 말해준다. 거짓말인 걸 알지만 고맙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 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의 말씀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내 삶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지만, 봄날은 성큼 가까워오고 있었다. 새들은 주께서 약속하신 봄이 다가왔음을 알리며 지저귀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어여쁜 자임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일어나야 한다. 겨울, 인고의 계절을 지나 하나님 인도하실 그 날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랐다. 일어서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루를 또 견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