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이일

염려, 또 염려

by 미농

4월 2일 : 염려, 또 염려

첫 주일, 주께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시편 23편 말씀을 주셨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시작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 듣고 보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화나고 분노했던, 안타까워하고 또 원망했던 마음이 잘 드는 약을 먹은 듯 차분해졌다. 놀라운 은혜다.


청년부 일원들과 대아수목원에 놀러갔다. 전도사님껜 낙방한 사실을 알려드리지 않았다. 우리들은 꽃이 피지 않았음에도 무척 근사한 수목원을 돌아다녔다. 김밥도 준비했다. 돗자리를 깔고, 바람은 불지언정 우리의 교제 안에는 소박한 기쁨이 가득했다.


늘 동일한 은혜로 서로를 품는 공동체다. 그들 앞에 나는 여전한 부족함을 느꼈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시편의 말씀을 그대로 고백했음에도 여전한 갈망이 있었다. 안정적이거나 전문적인 직업을 가져서 당당히 청년 여러분 앞에 서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또, 그런 모습으로 후배들을 멋지게 돕고 싶었다.


하나님께선, ‘이 녀석, 아직 멀었군.’ 하실지 모른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걷고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아 지친다. 신앙의 길이 원래 이랬던가. 나는 군종 때 하나님을 만나고 회심했다. 성경을 가까이했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면서 어느 영적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행성처럼 하나님 가까이의 신앙인으로, 진짜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궤도를 빙빙 돌 뿐, 더 가까이 가지 못했고 때로는 궤도 안에서 있으면서도 항상 방황했다는 거다. 하나님께서 이런 날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모임을 파하고 와서는 노트북 앞에 앉아 구직원서를 썼다.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약속한 사람과 가정을 꾸려야 했기에 예상보다 뒤쳐졌단 생각이 들었다. 한 회사에 지원했다. 그 밖에도 세 군데 정도 괜찮은 기업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썼다.


하나님께 ‘당신께 모든 것 내어드립니다.’고 기도하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 내 모습은 끊임없이 시간싸움을 치러내야 하는 현대 사회의 압박감에 영락없는 경주마가 됐다. 연봉과 안정성을 분석하고 지원할 기업들을 나열하고 있는 내가 기치지로 같았다. 조지 맥도널드의 설교가 마음을 따끔하게 했다.


부자들만이 아니다.

그러나 부자들만 소유물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불행해하는 사람들 역시 노예입니다.


나는 적어도 불행해하지는 않는다. 그저 현실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맹자 선생도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지 않는가. 하나님을 향한 내 항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분이 친히 허락하신 노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단지 그것이 하나님의 때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인지를 물어야 했다. 잠자코 기다려야 하는지,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도 두드려보면서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리고 후자를 택했다. 주여! 다만, 나를 모든 염려로부터 구원하소서.


내일의 염려에 사로잡히면 오늘의 머리는 종일 지끈거리고, 심장은 잔뜩 주눅이 듭니다. 차분하게 잠들어 있거나 꿈꾸고 있어야 할 때, 해가 반나절은 더 움직여야 찾아올 시간을 가지고 안달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하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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