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직업? 그게 중요한가
4월 3일 : 출신? 직업? 그게 중요한가
다시 시작이다. 경력을 살릴 수 없다는 부담은 있지만, 구직할만한 기업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지원했던 회사의 서류합격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 청년강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4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기업이었기에 끌렸다. 보수수준도 괜찮을뿐더러 직원들 사기도 높다는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나를 원하는 기업이 있을 줄이야. 당황스러웠던 건, 전화로 당장 다음 날 오전 11시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던 점이다. 또, 문자메시지도 받지 못했다. 내가 인사담당자였다면 문자메시지로 한 번 더 통보해주었을 것 같다. 경쟁률이 무려 150:1이라는데, 그만큼 많은 지원자가 지원했기에 일일이 응대하기가 어려워서였으리라.
면접을 준비하며 그 회사에 대한 호감도가 점점 커졌다. 첫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더 재밌는 건, 생전 모르던 중소기업에서도 ‘열심히 하면 분명 기회가 있을 거야.’하고 다짐하는 내 모습이었다. 눈높이가 낮아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어디에서든 선한 청지기처럼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히 기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동안 그렇게 애타게 원했던 사회적경제 분야를 버려두고서 지역기업의 인재가 되자고 생각을 전환해버린 내 모습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급한 건 취업이다. 당장 있을 면접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먼저, 그 회사 재무제표 3개년 보고서를 프린트해서 읽고 요약했다. 영상과 문서자료, 언론보도 내용도 전부 편집해서 메모지에 적어놓고 분석했다.
유동비율이 150%가 넘고, 순이익이 3년째 상승하고 있었다는 점. 주력상품의 시장점유율 또한 1위를 고수하고 있단 점이 매력적이었다. 현금흐름도 괜찮았다. 부채비율은 건전한 수준보다 다소 높았다. 사실 업종별로 부채비율의 건전한 수준이 얼마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니, 내 기준으로 따지는 것도 정확한 분석이 아닐 수 있겠지.
향후 경영지원팀에서 일을 해보면 그 회사가 어떤지 알 수 있겠지. 내 주변에 화학회사에 재직해 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도내 우수강소기업 중에서도 유일한 화학회사니까. 특수 업종에 따른 나만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대학 3학년 때, 전선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한 경험이 있다. 딱 한 달이었지만, 인상 깊었다. 그 회사는 부설 연구소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장에서 자신들만의 특허제품을 제조했다. 우리가 일했던 팀의 직원들은 제작된 전선들을 분류하여 수출하거나 납품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출용, 내수용 등을 구분하기 위해 페인트를 찍었는데, 그 일을 우리가 맡아서 했다. 선배, 동기,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현장실습을 했다.
우린 그곳에서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해졌다. 주로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선을 구분하고 옮기는 일은 에너지 소모가 꽤 컸다. 그래서인지 밥도 맛있었다. 우린 힘든 일도 서로 짊어지려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협력했다. 그러자, 우리는 한 달 사이에 몰라볼 만큼 가까워졌다. 그땔 떠올리면 양보하고 배려했던 서로의 모습만이 떠오른다. 지금도 서로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공장이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꺼려지지만은 않았다. 외려 좋았다. 뭐든 새로운 곳에 가면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으니까. 그곳이 그동안 공부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의 공장이라면 더더욱 배울 여지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대됐다.
이건 여담인데,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사셨다면 어떤 직업을 가지셨을까. 내 생각엔 조그만 중소기업 화학회사나 건설현장의 노동자가 아니셨을까 싶다. 물론, 당시 목수라는 직업이 어부보단 나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평범한 수준이었던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적어도 전문직이나 고임금 근로자는 아니셨지 않을까.
철저히 마이너의 삶을 사신 예수님에 무한한 존경심이 든다. 그분은 진정 우리의 고난을 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고난이 자신의 고난과 같은 것이 되게 하려고 죽기까지 고난 받으셨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지극한 사랑 덕택에 나는 지방대 출신에 계약직 경력인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지만 위대한 왕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상처들을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기쁨으로 아물게 해주셨다. 예수님마저도 베들레헴에서 나시긴 했지만 나사렛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자라셨기에 무시 받으셨다.
우리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란 말들을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얕보고 조롱하며 한 말들이다. 갈릴리 나사렛 같은 작은 고을에서는 그리스도는 물론이요, 선지자 한 명도 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신분으로 오시며 삶을 통해 가르침을 베푸셨다. 고로 나도 무슨 일을 하든, 어디 출신이든 주눅 들지 않고 살아야겠다 싶었다. 출신과 직업, 외모, 능력, 재산, 지위고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단 걸 깨닫는다. 늘 동행하심 가운데 어떤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고민해야겠다. 기도할 밖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