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4월 5일 :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주님,
하루 종일,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원서를 씁니다. 내 생애,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가정을 심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 싶다는 그 생각.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싶다는 그 의지. 어려운 걸까요.
하루 벌어 하루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취직자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꾸준히 다 잡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야 지금은 이렇게 꿈꾸지만 하루하루 촌음(寸陰)을 다투듯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서 절망할 때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지난 일 년,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어깨를 굽혀야 할 일도 많았고, 부족함 탓에 인간관계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도우십니다. 새로 예비하실 직장을 향해 나아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면접 보러 갈 곳이 있다는 것, 또 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 내가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용서일 줄로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바는 오직 용서였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꽃피는 용서, 그것은 단순한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결코 다시는 원수의 그 행위를 잘못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맹세였습니다. 또한 외려 당신은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정말 매일을 힘들어했고, 고통스러워해야 했습니다. 하필 왜 내가 지금 이런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어려움을 털어놓아야만 마음이 편했습니다. 아버지한테도 슬쩍 고백했지만, 진정한 제 아픔을 이해하시진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누구나 겪는 일이니 감내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밖에.
그렇습니다.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펴야 하는 수고로움도. 다른 이에게 무시당하는 수모도. 내가 먼저 모든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 현실도. 도무지 내게만 이렇게 힘든지 그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시련인 줄을 믿습니다. 그러나 굳이, 지금 제게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정녕 무엇 때문이십니까.
복수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원수가 주리고 목마를 때, 먹이고 마시게 하라고 하시네요. 그게 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이라고요. 역시 주님은 주님이십니다. 여기까지면 딱 좋았을 텐데. 조지 맥도널드는 한 마딜 덧붙이네요. 복수는 나의 인간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며, 죄를 멸하기 위함이라고요.
복수는 결국 죄인이 죄를 버리고 죄를 미워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거죠. 오직 주님은 죄인의 회개와 그에게서 자기 부인을 이끌어내는 것에 관심이 있으시네요. 저처럼 감정적인 복수엔 정녕 관심이 없으시군요. 선하신 분, 그래요. 좋습니다. 저 대신 복수해주세요! 다만 그가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친히 알게 해주세요. 나는 다만 그렇게 말할 밖에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