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막혀도 은혜는 막히지 않는다.
4월 8일 : 차는 막혀도 은혜는 막히지 않는다.
금강 로하스 벚꽃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 취업준비생이 무슨 부귀영화인가 싶겠지만, 유미가 가고 싶다고 해서 별 말없이 따라나섰다. 무료 공연인 탓에 사람들이 몰릴 게 뻔했다. 기다리는 시간을 미리 계산하여 오후에 가지 않고 아예 저녁에 가기로 했다. 어차피 월요일에 필기시험이 있어 공부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유미를 삼례로 불러와서 앉혀놓고 나는 공부를 했다.
유미는 삼례에 오니까 무척 즐거웠나보다. 여기저기 다녀온다고 하면서 풍경사진, 삼례 성당사진, 셀카를 잔뜩 찍었다. 이렇게 좋은 날 같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미안해.’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일부러 티는 안 냈다. 끝도 없이 미안해 질까봐, 내가 약해질 까봐 그랬다. 마음을 조금 굳게 먹을 필요가 있었다.
다섯 시쯤 됐을까. 기다리는 유미가 안쓰러워서 지금 출발하자고 말했다. 유미는 좋아했다. 굳이, 멀리까지 뮤직 페스티벌을 가는 이유는 유미가 좋아하는 변진섭씨의 공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미는 최신 음악보다는 감성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있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런 노래를 들으며 은은한 생각에 잠들곤 하는 낭만적인 여인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길은 끝도 없이 막혔다. 정말, 전주에 살면서 교통체증을 잘 느끼지 못하면서 지냈는데, 대전 도심, 그것도 붐비는 행사장에 가까워오니까 답답한 교통흐름이 이어졌다. 운전을 하는 나는 이내 감정이 날카로워졌다. 유미는 왜 자기가 가자고 하는 곳만 이렇게 불평하냐고 반문했다. 나는 기꺼이 간 것이고,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괜히 미안해졌다.
대전까지 가는 데 막힘없이 한 시간 걸렸다. 하지만 행사장을 5km 앞두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정말 막혔다. 도착해서도 돗자리 깔 공간 하나 찾기 어려웠다. 배고픈 우리는 행사장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계획했는데 푸드 트럭의 음식을 구매하려는 대기 줄이 너무 길었다. 저녁 식사는 포기할 수밖에. 대신 무대만큼은 확실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그룹 어반자카파의 공연과 변진섭 씨의 스페셜 무대는 꽤 감동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과 잔디밭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최고의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던 시대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었겠지.’ 싶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그 분의 가르침을 귀 기울여 들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영화 <벤허>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잘 묘사돼있지 않던가. 주인공 벤허가 부인과 어머니에 떠밀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모습. 그 다음 장면엔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베푸셨고 언덕엔 제자들과 가르침을 받으려는 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당시 그리스도에 대한 목마름이 얼마나 절실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물리적인 답답한 교통체증보다 우리에게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은 영혼의 막힘이다. 영혼의 목마름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암흑이다. 그야말로,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숨 막힘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우리가 의지할 곳도, 우리가 찬양할 대상도, 우리가 기도하고 아뢸 분도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의 목마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해결되었으니까. 예수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은혜 가운데 거하며 산다. 기도의 순간은 진정 우리의 간구함을 아뢰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을 목적대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주여, 차가 막혀도, 은혜는 막히지 않음을 정말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