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 이야기
4월 9일 : 거듭남 이야기
우리 교회 한영일 집사님은 예순 중반의 나이에도 열정이 가득하시다. 청년들을 보면, 꼭 같이 자리를 하시며 조언을 해주신다. 가끔은 그 조언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오늘은 집사님께서 사우디에서 일하시던 때의 이야길 들려주셨다. 여러 이유로, 가족을 두고 80년대에 사우디에서 일하게 되신 일. 일 년에 단 한 번만 만날 수 있었던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신천지로부터 교인들을 구제하는 사역을 하시게 된 이유까지. 기도로 쌓은 모든 것들을 인생을 통해 체험하고 계시다며 청년 때의 기도를 강조하셨다. 죄송스러운 점은, 한 번도 댁을 방문해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 매번 오라고 하시기에 간다고 대답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다. 그럼에도, 식사보다도 값진 가르침을 전해주신다. 참 감사하다. 올해 안엔 집사님 댁을 꼭 방문할 것이다.
오늘은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이 세례를 받았다. 우리 반은 4명 전부 받았다. 입교한 친구 둘에 세례 받은 친구 둘. 나도 입교할 때, 꽤 떨렸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또 얼마나 떨렸을까. 세례 교인이 된 것을 축하해줬다. 세례란, 성찬 예식에 대한 참여, 그 이상이다. 예수께서 씻어주신 우리의 죄, 그에 대한 감격과 거듭남의 의미다. 거듭남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니고데모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니고데모를 ‘의심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니고데모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요한복음 3장에서는 거듭남에 대해 ‘어머니의 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냐며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2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확신했다.
또, 복음의 백미인 3장 16절을 이끌어냈으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아랫사람들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하고 그를 잡아오지 않았을 때 니고데모가 그들을 두둔하여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닌가. 또,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그가 그분의 시신을 장사하려고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나 가져온 것을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니고데모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을까 싶다. 감히 다수의 의견에 담대히 대응하지 못하고,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식으로 얘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변화를 겪어내고 있었다. 그 다음 대목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나시기로 예언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간단히 무시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지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 점까지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또,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하였으나, 갈릴리 출신임에도 우리가 잘 아는 선지자 하나가 있다. 바로, 요나다.
요나는 갈릴리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한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와 동향 출신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요나와 같이 밤낮 사흘 동안 명백히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
니고데모는 내게 특별한 의미다. 니고데모란 사람을 잘 몰랐을 때는 그저 멍청해보였고, 한심했다. 그러나 말씀을 찬찬히 읽으며 니고데모를 다시 발견했을 땐 그를 재평가하게 됐다. 진실을 진실이라 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을 가졌을 거란 생각을 하니 존경스러웠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란 소설이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촬영한 동명의 영화도 있다. 거기선 배교가 중심소재가 된다. 선교사에게 배교할 것을 강요하는 17세기 일본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순교가 허락되지도 않고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순간을 위해 배교할 수 있어야 할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아니, 그 분은 침묵하지 않으셨어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근 두 달간, 그 주제로 고민을 했다. 그러다보니 17세기의 배교자들과 니고데모란 사람에 대해 더욱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매 순간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구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우리지만, 우리만 단독으로 두시지 않고 신앙의 선배들과 공동체들을 함께 두신 일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 자체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는 일이니까. 신앙의 지평이 넓어지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순간들이다. 기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