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십일일

신앙 공동체와 교회에 대한 고민

by 미농

4월 11일 : 신앙 공동체와 교회에 대한 고민

온 종일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생각하면서 번민했다. 취업준비생이 도대체 뭐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내겐 나름 중요한 문제였다. 가장 친한 벗이 ‘나는 무교회주의자다.’고 고백한 이후를 떠올렸다. 그를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다. 그는 전도사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제도화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솔직히 의아했다.


이내 우리 둘 사이에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줄어들었고, 가끔 내가 ‘그래도 교회는 가야지.’하고 말하곤 했다. 그 녀석은 그저 웃곤 했다. 함석헌의 책을 읽고, 류영모를 처음 알게 됐다. 이 땅, 100년 전의 신앙인이었던 그들.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신앙이란 것은 제도화된 교회 하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골자인 것 같았다. 개인주의 신앙이 아니다. 교회가 아니어도 신앙공동체 안에 구원이 있단 말이다.


베이직교회 조정민 담임목사도 교회 건물이나 제도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한 적 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회 건물과 교인 수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만 보고 가는 온라인 교회, 트위터 교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본질적인 이야기다. ‘예수님의 메시지가 흘러가고 그 메시지가 공유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발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교회를 없애잔 말이 아니다. 나는 진정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도화된 교회가 부분적으로 진리를 왜곡하거나 폐단이 생길 수 있지만 스스로 정화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제도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돌이켜 개선하면 된다. 다만 전제되어야 할 것은 활발하고 자유로운 토론 문화다. 비판이 없는 곳에는 진리도 없다. 교회의 자정 능력은 이로부터 온다.


우리나라에선 웃어른에 대한 공경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영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을 숨겨놓고 말하지 않는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 따로 만나서 이야길 나누거나 편지나 전자메일을 보내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보아도 알만한 잘못을 방임하는 것도 죄다. 루터는 <대교리문답>의 제1부 십계명의 “간음하지 말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이 어떤 위험에 빠지거나 구조 요청이 있을 때 그를 변호하고 보호하고 구출해야 하며, 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돕고 협력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막을 수 있는데도 이 일을 경솔히 여기거나 이런 일을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 범인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유죄입니다.”


그런 교회공동체가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공동체가 된다고 해도 문제는 바깥 현실이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는 데 있다. 사람은 살기 어려워질수록 의지할 신을 찾고 종교에 귀의한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경제침체와 취업난 등의 팍팍한 삶 속에서도 탈종교화 현상만 늘어가고 있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무종교율은 56.1%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겼다고 한다.


교인이 줄다보니 신앙공동체들도 줄어들고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진정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존 신앙공동체라 불리는 모임도 점차 세상 가운데서 공동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20년 전에 비친 교회 사람들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취업과 학업, 직장생활이 어려워도 소모임 안에서 서로의 어려움을 내려놓으며 함께 기도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교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까웠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 다녔던 교회는 교제시간이 많았다. 오전 예배를 마치면 삼삼오오 모여 목사님께 궁금한 걸 물어보았고, 오후에 모여 이웃 교회와 프리스비 경기를 벌였다. 매주 함께 땀 흘리고 교제했다. 예배 전후로 다과를 나누며 삶을 나누었다. 교회마다 장단점은 있겠지만, 교제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이나 다름없으니까 그 점은 확실히 좋아보였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교인들과 몇 차례 프리스비 경기를 주선하다가 실패하고 그만 두긴 했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 분위기는 많이 바뀐 것 같다. 삶을 나누고 신앙을 고민하고 함께 기도하는 일보단 행정적인 일과 세상 속 고민에 하루하루 지쳐 낙담할 때가 많아진 것 같다. 나마저도 개인적인 어려움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뿐, 공동체에 내어놓고 함께 기도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물론 이 모든 건 나의 삶 가운데서 느낀 것이기에 가장 먼저 회개할 사람은 나겠다만 안타깝다.


한 교회의 청년으로서 기도한다. 우리 한국 교회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규모가 커지기보다는 단 10명이 모여도 서로를 가족처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앙생활하며 가장 행복했던 때를 말해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군 시절을 꼽겠다. 나는 보급병이면서 주말엔 군종병이었다. 주일이면 예배드리고, 간식을 나눴고 토요일엔 찬양을 연습하고 교회 청소에 앞장섰다.


군종들이 전부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앙을 고민하며 성경을 공부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설레고 그립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군인 신분이라는 특수성이 오롯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님만이 나의 행복이요 희망이셨다고 고백했다.


또, 군종 식구들 모두가 예수님을 더없이 사랑하는 이들이었기에 신앙공동체로서의 시너지도 생겼었다. 목사님도 사례비 없이 근근이 생활을 유지해나가면서도 오롯하게 기쁨으로 자신의 일을 감당하시며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셨다.


그런 행복을 나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신학대학교에 진학하면 그런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일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면 그런 좋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도, 먼저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의 이 청년 공동체를 올바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


좀 더디다. 그럼에도 우리 청년 공동체가 공동체라는 말에 걸맞게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며 끈끈한 모습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두, 세 사람의 모임 가운데 이미 임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니까.


꿈꾸어본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가득한, 하나님으로 가득한 그런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갈 것이다. 비록 취업준비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예였던 요셉조차 사용하시지 않았던가. 지금의 나는 노예 신분보단 낫지 않은가.


세속, 수많은 채용공고와 정보 속에 휩쓸려 있을지라도 나는 주를 잃지 않겠습니다. 나는 무력합니다. 아무 자랑도, 아무 능력과 재능도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주세요. ‘진정으로 약해지면 무력해지고, 진정으로 무력해지면 거기서 능력을 얻습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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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엄마와의 대화에서 어려움을 겪으시는 것 같다. 술 한 잔을 해야 마음을 여시고 속 얘길 낱낱이 꺼낼 수 있는 아빠완 달리, 엄마는 음주 자체를 싫어한다. 아빠가 느끼는 서운함을 어느 새 모든 걸 넘어 대화 상대의 단절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내게 물으신다. ‘맥주 한 잔 할래?’ 기독교인 중의 기독교인인 내가 쉽사리 넘어갈리 없다. ‘아니요.’ 씨익 웃으시곤 반쯤 취하신 아버지께서 집을 나가신다. 멍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따라 나갔다. ‘그래요. 한 잔해요~’ 결국, 당신 뜻대로 슈퍼에 가서 술과 안주를 사왔다.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 신앙 얘기가 나왔다. 뜻밖이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신다. “나는 예배에 가면 꼭 이렇게 기도한다. 무얼 바라고 원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뜻대로 해달라고 말이야. 이번 임직식에 엄마가 권사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우리가 바라야 할 바가 아니야.” 나는 그 말에 적잖이 놀랐다. 비몽사몽이던 엄마도 잠이 깼다.


‘오직 하나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한단다.’는 아빠의 말이 큰 충격이었다. 우리 아빠를 위해 나머지 네 식구는 적게는 20년, 많게는 25년 넘게 기도해왔다. 그러나 이토록 순수한 신앙이라니. 너무 감사했다. 아빠가 그동안 고백하지 못했던 것은 그토록 말하고 싶은 그 말을 우리가 말하지 못하게 막았던 게 아닐까.


술 취했으니까. 술 마시려고 하니까 괜히 싫어서 피했기에 그 말이 이제야 고백된 게 아닐까. 아빠한테도 이런데, 내가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외면을 해왔을지 생각해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그게 아니라면, 정작 가까운 아빠에게 친하다는 이유로 그런 고통을 준 게 아니었을까.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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