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작
4월 12일 : 고통의 시작
어제 새벽 늦게 자는 바람에 일어나보니 영 기운이 없다. 몸살에 콧물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카페에서 공부를 해봐도 시간은 채울 수 있겠는데, 집중이 안 되어 효율은 떨어졌다. 답답하더라. 토익을 풀었다. 성적이 좋지가 않다. 어쨌든 처음 풀고 나서 더 이상 공부를 못하겠단 생각이 들어 익산으로 향했다.
그냥 가진 않고, 민호가 알려준 가게에서 가성비 최고의 케잌을 하나 사들고 갔다. 꽤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검증된 맛이 아니기 때문에 유미가 좋아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유미를 만났다. 대학로에서 콩나물 불고기를 먹었다. 우리가 대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런저런 내용으로 대화가 오갔다. 카페에 가서 케잌도 같이 먹으며 오늘 하루를 기념했다. 생각해보니 부활절이 얼마 안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구원론 논쟁이 떠올랐다.
부활절을 앞둔 요새, 한국교회에서 구원론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도들 사이에서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란 개념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나 고민 없이 단순하게 접근해왔던 것이 사실 아닌가.
‘나는 예수를 믿으니 의롭다함을 얻었고 성화되고 있는 상태다. 그러니 내가 타락해도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어떻게든 다시 이곳으로 이끄실 거다. 나는 구원을 보장받았다.’는 해석으로 믿음 이후의 생활에 모순이 발생해왔다. 세상 속에 하나님을 잊고 살면서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끊임없이 기존 신앙에 대해 성경을 바탕으로 한 의문을 제기하기를 소원한다. 전통은 인간이 지켜가기에 타락하기 쉽다. 본질을 잃기 쉽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 아닌가. 무작정 옳다, 옳다 할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질문함으로 사변적이지도, 맹목적이지도 않은 참다운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애써보자.
나도 내 신앙적 순수함을 지키고자 아주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을 갖고 있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또, 옳은 것을 실천하며 내 삶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으로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도 하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내 의지적인 결단이다. 다만, 끝날까지 이 마음을 지켜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Q. ‘저항’의 자리에 들어선 건 어떤 단어들인가.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 “순종이니, 복종이니 하는 말이다. 교회는 이런 말들을 ‘믿음’과 동일화시킨다. ‘순종=믿음’이고, ‘복종=믿음’이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저항, 국가에 대한 저항, 개인적 삶의 양식에 대한 저항이 상실돼 버렸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핵심 키워드는 ‘저항’이었는데 말이다. 단순히 저항만을 위한 편협한 저항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예수로 돌아가고,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저항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