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농 Nov 15. 2017

설거지와 아내

11/12/17


  철없던 대학생이었던 우리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당신은 아내가, 나는 남편이 됐단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현실을 살아내며 하루의 설거지를 마치는 당신이 사랑스럽다. 안경 쓴 당신은 자랑스럽다는 듯 연신 깨끗해진 주방을 바라본다. 이윽고, 벗겨진 고무장갑을 올바로 세워놓고 손을 탈탈 털어낸다. 박수라도 치고 싶지만 작은 방 한 칸에서 설거지가 마무리되는 소리를 몰래 듣고 있다. 소리만 듣고 있어도 당신을 지켜보는 것만 같다.


  설거지하는 당신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꾸미지 않은 녹색 티셔츠에 잠옷 차림으로 아무 말 없이 그릇을 닦아내는 당신이 마치 도를 닦는 노승 같다. 집안 구석구석을 전국처럼 누비며 매일 늘어나는 일을 하루씩 마치는 당신의 여정이 마치 옛 공자 선생의 그것과 닮았다. 비록, 쥔 것 얼마 없는 부족한 삶이지만 햇살이 스며들며 깨고 또 어둑해진 밤에 마주앉는 일이 반복되며 우리도 인생의 목표라는 거창한 일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글쟁이가 글 쓸 시간이 없다는 게 변명 같지만, 당신과의 일상에서 얻는 것만큼 표현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노랗게 익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계란찜을 먹으면서도 그 정성을 충분히 칭찬해주지 못해 미안해. 나를 위해 바깥에 나가지 않고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내 가족을 당신 가족처럼 대해줘서 고마워. 잠버릇 나쁜 내가 네 자릴 침범해도 응징하지 않고 용서해줘서 고마워. 운동 마치고 별을 세며 귀갓길에 함께 해주는 네가 고마워. 네가 고마워.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