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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농 Jun 08. 2018

내가 집사라니

고양이를 키우는 아빠의 아들


교회에서도 결혼한 몸이지만 아직 집사는 아니다. 그런데, 내게 집사란 직책을 준 인물이 있다. 우리 집 두 막둥이 아기고양이 별이랑 달이다. 시댁에 입양된 귀염둥이 둘은 집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다 밤을 맞이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들의 쉼터요, 어머니의 꾸중은 그들에겐 덫이니 온종일 그 두 사이를 떠도는 고양이 삶을 산다. 겉으론 노닥거리는 것 같지만 실은 굉장한 철학자다. 쇼파에 앉아 주인처럼 노란 눈을 껌뻑거리다가 낮잠을 자고, 사상을 떠올린다.


야성을 잊지 말란 지 어미의 말을 떠올려서일까. 아내의 청바지를 긁고, 누이의 손을 할퀸다. 둘이서 사냥놀이를 할땐 우습다. 호랑이처럼 잔뜩 긴장한 손톱날을 세우고도 싱거운 싸움을 이어간다.


아빠는 파출소 근무 중에 민원인이 맡기고 간 불쌍한 새끼고양이들을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생명은 거두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 식구가 늘어서 좋지만 그들의 수발을 들어주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배변은 물론이고 놀아주고 손톱도 깎아주고 밥도, 각종 놀이기구도 구비해야 한다.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장난에도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전선이 얽힌 텔레비전 뒷편에 자리잡고 앉은 달이를 몇 번이나 빼내고서야 엄마는 말했다. “내가 집사라니.”


엄마는 얼마 전, 교회에서 권사가 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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