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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농 Aug 25. 2019

육아 11주 차 : 첫 외박, 승부를 걸다.


가장의 무게

  어떤 분들은 ‘고작 서른인 사람이 얼마나 무거운 가장의 짐을 지고 있길래 이런 글을 쓰는가’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으로써 직업적 어려움을 직면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멀든 머지않든 직장을 떠나야 할 때는 오게 마련이다.


  경영컨설팅 자격증을 준비했다. 첫 직장에서 배운 건 실무능력보다도 직업의 분야였다. 대전의 경영컨설팅 분야 모 연구소 부소장은 오후 4시에 퇴근했다. 전국을 돌며 강연을 다니면서도 오후 4시만 되면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한 분야의 국내 최고 수준이 되면 근로시간은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갈수록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는 확보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일에 대해서는 최고가 될 것이지만 말이다.



2년 전 뿌린 씨앗을 올해서야 틔우다.

  때는 2017년. 생각의 끝에, 잠시 그 자격증에 도전했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난 뒤였다. 의지박약이었나 1차 시험을 치르러 가지도 못했다. 그만큼 절실함이 없었다.


  2019년. 다시 도전했다. 재작년과 바뀐 게 많았다. 아내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 1차 시험을 치렀고 합격했다. 회사생활을 하며 회계의 기본을 틈틈이 갈고닦았고 영어성적이 기대 이상이었던 덕이었다. 다음으로 치러야 하는 2차 시험은 난이도에 비해 공부를 많이 못했다. 꾸준히는 했다.


  회사에 아침 일찍 가서 공부를 했다. 정시 근무시간에 맞춰 출근하던 사람이 일찍 가니까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오기 전에 더 일찍 출근해서 공부에 매진했다.


  시험을 앞두고는 여름휴가를 내서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출산 직후 아이가 어려서 첫 50일 정도는 공부 시늉도 못 냈다. 50일이 지나서야 조금씩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육아는 아내 혼자의 몫이 아니기에 내 몫을 하기 위해 두 배는 더 부지런해졌다.



아이와 아내가 그리운 밤.
외로운 여의도에서 혼자 잤다.


  시험 전날. 그랬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그 호텔에서 묵었다. 고속철도로 밤 10시에 호텔에 도착해서 숙면을 취하고 나서 곧바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영상통화로 딸아이의 모습을 봤다.


  아내도, 딸도 무척 고마웠다. 그리웠다. 이렇게 결전지로 온 이상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쓰러져도 그냥 쓰러질 순 없었다. 포기하지 않을 각오였다.


  드디어 시험 시작. 1교시부터 논술형인 시험에 적응하지 못했다. 1분을 남기고 30점짜리 문제를 쓰다가 시험이 종료됐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상심했다.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다음 교시를 준비했다.


  2교시엔 ‘오! 하나님’이란 말이 나왔다. 해볼 만했다. 답을 모두 적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답이 정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 문제가 출제되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3교시가 됐다. 전체적으로 해볼 만한 문제들이었다. 외우고 정리했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출제됐다. 끝까지 포기 않고 천천히 답을 적었다. 최종 결과는 10월께야 발표된다. 참 감사했다. 노력이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딸과 아내가 전심으로 응원해준 덕에 잘 치를 수 있었다.


  떨어져도 후회 없다. 시작한 이상 목표한 작은 일들을 성과로 이어가고 싶다. 자녀들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자매에게 참 고맙고 감사드린다. 후련하다. 이렇게 11주가 지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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