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ssanov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농 Nov 08. 2019

대리운전


  회사에 다니고, 회식을 하게 되면서 대리운전을 부르는 경우가 적잖다. 대리운전도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에 신경이 쓰이곤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이제까지 만난 분들은 대체로 좋은 분들이셨다. 어떤 분은 수염을 기른 도인 분이셨는데 오전엔 철학 수업을 하신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권투선수였다가 대리운전을 한다고 했다. 어떤 분은 교회 집사님으로 아내와 찬양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장학생으로, 서울의 명문대에 다닌다는 기사님도 계셨다.


  투잡을 하신 분들이 다수였다. 대리 운전하기가 힘들어졌다며 푸념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래도 사람 만나면서 일하고, 지루하지 않은 이 일이 좋다며 애정을 표하는 분도 계셨다.


  대리운전을 마치면 기사님과 손님인 내가 마주 서게 된다. 인사를 드리고, 정해진 몇만 원을 드린다. 더 드리진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봉투에 넣어 고개 숙이며 정성스럽게 드린다. 그러면 대개는 미소 지으시거나 기뻐하고, 또는 감사하다며 답례를 하고 돌아가신다. 이렇게 예의를 다하게 된 건 이유가 있다.


  전주에 살 적에, 한 대리운전기사님과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군산에서 출발할 때 차를 찾지 못하고 헤맸는데, 그 대가로 추가금액을 달라는 요구가 발단이었다. 운전 내내 퉁명스럽더니 도착하자마자 추가금액을 요구하는 그분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다.


  내 입장에선 정당한 항의였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돌변할 수 있습니까. 먼 길을 걸어온 것도 아니고 주차한 곳이 인적이 드물어 근처 사거리에서 기사님을 만났고 잠깐 골목을 잘못 들어서서 다른 골목으로 모시고 간 것뿐인데요.’


  여러 말이 오가고, 기사님은 툴툴대며 한 번 노려보고는 몇 마디를 던져놓고 그냥 가셨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좀 더 조심하게 됐다.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주차지역 근처에서 인근 건물의 상호를 알려드리고 만남을 가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보니 서로의 배려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대리운전을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유일하고 소중한 일이고 직업이다. 업무 특성상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이 몰리기 때문에 그들의 시간은 촉박하다. 초침의 움직임 하나에도 그날 일의 성패가 갈린다. 그래서 그 기사님도 민감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고 많은 대리운전기사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오늘도 밤을 밝히며 손님을 모시는 기사님들의 하루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 옷차림은 아내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