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농 Jan 01. 2020

육아의 원칙을 정하게 된 이유

원칙없는 육아는 독이다.


  처음, 육아의 원칙을 정했다.

  원래는 원칙이랄게 없었다. 원칙을 정하게 된 사유는 이렇다. 근교 카페로 놀러갔는데, 아이를 보고 예쁘다는 어른들이 몇 분 계셨다. 어른들이란, 대략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까지로 보이는 우리 부모님 또래의 분들이다. (말하자면, 베이비부머 세대다.) 


  기분 좋게 간 자리에 아이를 예뻐해주시는 건 좋은데, 갑자기 술취한 아저씨 한 분이 와서는 아이를 안아보겠다고 손을 뻗었다. 무안한 정적 3초가 흐르고 나는 그 아저씨에게 아이를 건네주었다. 건내줄 때 술냄새가 심하게 났다. (정확히 2020년 1월 1일 오후 4시 50분쯤 됐다.)



  아저씨는 안아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듯, 동료 아줌마에게 아이를 건네주었다. 그 아줌마는 우리 아이 손에 연신 뽀뽀를 했다. 우린 발만 동동 굴렀고, 내 표정은 굳어갔다. 그들은 아이가 울 지경이 되어서야 아이를 내주려고 했고, 나는 아이를 얼른 데려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분 좋게 처음 간 '보령 우유창고'에서 흑역사가 시작됐다. 아이의 시선이 그 쪽으로 갈 때마다 그들은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래, 여기까진 좋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려고 짐을 싸자, 같은 아저씨가 와서는 아이를 달라고 손을 뻗었다.


  아이를 두 번이나 내준 나란 사람은 정말 바보같다. 또 아저씨는 동료 아줌마와 아저씨한테 우리 아이를 보이고는 울먹일 때가 되어서야 다시 데려다 주었다. 7개월된 딸아이와 나, 그리고 아내는 황급히 장소를 빠져나왔다. 나가는데도 그 일행은 끝을 모르고 우리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는 길에, 우린 원칙을 정하기로 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애써 유모차를 돌려 빠져나왔다. 오는 길에, 우린 육아의 원칙을 정하기로 했다. '예의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일에 우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깨어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원칙이 필요했다. 원칙이 있어야 그 어떤 상황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오늘과 같은 무례한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달라고 하면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손에 뽀뽀를 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런 것들은 '육아의 원칙'이란 장비로 무장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오늘과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부모에게 허락이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무작정 아이를 데려가는 일은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일을 이렇게 적는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더하면서 말이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의 잡동사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