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전화를 하다가 생계가 어려워 답답하다고 했다. 주택담보대출과 이런저런 카드빚 거기에 두 아이의 살림살이. 휴직 중인 아내를 위해 외벌이. 이런 것 때문에 갑자기 나온 말이었다. 어머니의 다음 말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 내가 오백만원을 줄게."
그 말에 얼어붙고 말았다.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엄마는 십년인지 이십년인지 모를 세월동안 꼬깃꼬깃 모아둔 돈을 꺼낸 것이다. 아들을 위해 선뜻 내놓겠단 것이다. 금방 써버릴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서.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그 마음. 뭉클하며 목이 조금 메였지만, 이성을 곧 찾았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나, 너무 나약한 모습이었나. 결혼하고,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는 걸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황급히 전화를 끊고 마음을 다진다. 어머니는 대학원 학비에 보태라. 둘째 분유값에 보태라고 한 번 더 권한다. 고마운 말씀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고, 난 아직 젊다. 지금 어려움은 차차 이겨내고 조금 아끼며 버티려고 한다. 어머니의 그 마음에 다시 한 번 감동을 받는다. 전하진 못했지만, 혼잣말로 속삭인다. '어머니, 고마워요. 정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