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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Apr 13. 2020

아빠와 샤워하기 싫은 유둥이

2020.04.13

내가 쌍둥이들을 처음 목욕 시킨 것은 산후조리원이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간지 하루째였나 이틀째였나, 여튼 조리사 선생님이 욕조와 수건을 준비해 온 뒤 시범을 보였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녀석들을 잡는게 어찌나 조심스러웠는지 잔뜩 긴장한채로 '실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서기 전까지는 조금 익숙해지긴 해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한녀석을 목욕시키려면 나와 아내 둘이 한꺼번에 붙어야 했다. 한 사람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잡아 욕조에 앉히고 다른 한사람이 부드러운 수건으로 살살 몸을 닦았다. 나머지 한 녀석은 보행기나 점퍼 등에 앉혀뒀다. 씼긴 다음에 말리기도 참 오래걸렸다. 


아이들이 일어서고 걷기 시작한 다음에도 한동안 머리감기기는 참 어려웠다. 한 사람이 눕혀서 안고 다른 한사람이 샤워기로 머리를 감겼다. 아이는 바둥바둥 거리기도 하고, 불편하다고 소리지르기도 하고. 


어느날인가 부터는 욕실 간이 계단에 앉혀놓고 머리를 감길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은 눈에 비눗물이 들어갈까봐 난리를 쳤지만 한손으로는 눈을 가려주고, 다른 손으로는 능숙하게 머리를 적셔 샴푸까지 한다. 입으로는 '하늘봐, 하늘 봐. 안 그러면 비누들어간다'란 소리를 100번쯤 하면서. 


이제 다음단계는 알아서 샤워를 하는 단계인가 싶었는데 아직 멀었다. 특히 요즘은 샤워를 시킬때마다 유둥이와 다툼이 생긴다. 유둥이는 간지럼을 많이 탄다. 그것도 아주아주아주 많이 탄다. 

특히 목에 간지럼 세포(??)가 집중되어 있는거 같은데 샤워를 시키면서 목에 손만 대려하면 벌써 다섯 걸음쯤 뒤로 도망가 있다. 손도 안댔는데 간지럽다고 혼자 막 깔깔거리고 몸을 비튼다. 아빠 손에서 장풍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어제는 또 다른 이유로 싸웠다. 머리에 샴푸까지는 했는데 행구려니 난리다. 아빠가 샤워기 물을 너무 세게 해서 아프다는 거다. 하늘에 맹세코 난 세게 안틀었다. 실랑이를 넘어 승강이까지 벌어졌고, 결국 유둥이는 엄마를 불렀다, 아빠가 아닌 엄마와 샤워를 마무리하겠다며 소리를 쳤다. 엄마가 '도대체 왜 이리 시끄럽냐'며 들어왔고, 그걸로 상황종료. 


엄마와 샤워를 마친 유둥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진 얼굴로 나왔다. 머리를 말려주며 다시는 아빠와 샤워할 생각 하지 말라고 했더니 씩 웃는다. 눈을 막 흘겼더니 더 웃는다. 어떻게 해도 아빠가 못 이기는 것을 아나보다. 참 많이 컸다. 


 

코로나19 때문에 놀이공원도, 수족관도, 공룡박물관도 가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둥이들에게 아파트 놀이터는 너무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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