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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Sep 25. 2022

야구 '집관'하는 쌍둥이

2022.09.25

지난주 금요일, 그러니까 9월23일은 쌍둥이도 엄빠도 기다리던 날이었다. 어린이날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쌍둥이팀과 곰팀의 경기를 잠실에서 봤고, 지난달에는 우재가 좋아하는 호랑이팀과 영웅팀의 경기를 고척에서 봤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유준이가 좋아하는 독수리팀의 경기를 현장에서 볼 차례. 그래서 엄빠는 날을 고르고 골라 문학에서 하는 독수리팀과 강아지팀 경기를 보기로 결정했다. 


엄마는 원래 갖고 있던 모자와 유니폼에 더해 야구장에서 힘차게 두드릴 응원방망이를 비밀리에 주문했다. 그리고 앞에서 두번째라는 아주 좋은 자리에 표도 샀다. 

둥이들의 야구장 직관 콜렉션.

그러나.....지난주 초 우재가 감기에 걸렸다. "그래...금요일까지 어떻게든 낫게해서 가고 말리라..." 병원도 다녀오고 보일러도 틀고. 그러나.....유준이도 걸렸다. 당연하지, 쌍둥이는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노니까.

결국 고심 끝에 엄빠는 수수료를 물고서라도 표를 환불하기로 결정했다. 아빠가 숱하게 가을 야구장을 다녀봐서 잘 아는데, 9월달 야구장은 생각보다 엄청 춥다. 열심히 응원도 하고 춤도 추고, 술도 한잔 먹고 그러면 모르겠지만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야구를 보고 있으면 뼈까지 시려온다. 물론 엄빠는 후리스에 담요까지 준비해 갈 참이었지만, 둥이가 감기에 걸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포기. 

둥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거실에 야구장을 재현해 주기로 약속했다. 야구장처럼 의자도 만들어주고, 치킨, 떡복이, 과자도 아빠가 주문 즉시 배달해주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춥다'는 것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서운해하던 둥이들도 조금씩 설득에 넘어왔다. 무엇보다 아빠 심부름 시킬 생각에 들떠버렸다. 

역시 야구장에서는 홈런볼이지!!

이렇게 완성된 '집관 세트'가 위 사진이다. 여기에 10개구단 모든 응원가가 담긴 '어플'을 패드에 깔아서 야구하는 내내 틀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도 '환청'이 들린다. 


아빠의 바람과 달리, 유준이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독수리팀은 강아지팀에게 아쉽게 졌다. 아빠가 그토록 바라던 쌍둥이팀의 우승은 한걸음 멀어졌다. 그래놓고 독수리팀은 다음날 쌍둥이팀을 또 이겨버렸다. 

그래도 아빠는 엉뚱해지지 않았다. 아빠도 쌍둥이도, 엄마도 모두 즐거웠으니까. 물론 이겼으면 더 행복했겠지만...

 

음료수 마시는 것도 비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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