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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Aug 15. 2023

유단자가 된 쌍둥이

2023.08.15

벌써 열흘이 되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매우 뜨거웠다. 날씨 뿐만 아니라 쌍둥이들이 가는 곳 모두가 뜨거웠다. 엄마아빠의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이었을까, 쌍둥이들이 유단자를 향한 열망 때문이었을까. 

지난 6일 일요일. 쌍둥이들은 아침부터 엄마가 정성스럽게 줄여놓은(?) 도복에 빨간 띠까지 메고 길을 나섰다. 그렇다. 국기원이 주관하는 태권도 1품 시험 날이었다. 시험은 오후 1시나 되어야 시작하지만 둥이를 비롯해 응시하는 태권소년소녀들은 아침 일찍 도장에 모여 연습을 해야 했다. 

도장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데 둥이들을 데려다주고 나온 아내가 타면서 외쳤다. "2장, 3장이래" 오늘 시험 문제가 태극 1~8장 중 2장과 3장이란 뜻이다. 다행이다. 뒤로 갈수록 복잡해져서 우재가 애를 먹었는데 2장과 3장이면 해볼만했다.

아침겸 점심을 먹고 아내와 음료수, 아이들이 갈아입을 옷 등을 챙겨 시험장으로 향했다. 가양동에 있는 체육관인데 멀리서도 도복 입은 아이들이 수십명씩 보인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부리나케 가보니 이미 우리 아이들도 도착. 두리번 거리던 유준이와 우재가 멀리서 엄빠를 보더니 손을 흔든다. 


에어컨을 켰다는데도 체육관 안은 너무 더웠다. 사람이 수백명 모여있는데다 운동까지 하고 있으니 안 더울수가 없다. 애들이 쓰러질까 걱정했는데 내가 먼저 쓰러질 지경이다. 


아이들은 복도에서도 대기실에서도 연습에 한창이다. 다행히 대기실은 시원하다고 한다. 드디어 품새 시험. 앞줄에 선 유준이와 우재 모두 곧잘 한다. 여전히 우재의 태권도는 태권무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틀리지 않고 연습한 만큼은 한 듯하다. 유준이는 생각대로 잘했다. 


그리고 이어진 발차기 심사. 원래는 겨루기를 해야 하는데 날이 너무 더워서 보호구를 착용하면 아이들이 진짜로 쓰러질 수도 있으니 발차기로 대체했다고 한다. 유준이와 우재가 같은 조에서 시험을 보는데 옆에 선 다른 태권도 도장 아이들이 날아다닌다. 유준이는 그래도 힘차게 하는데 우재는 아무래도 앞차기만 계속 한 것 같다. 본인은 다른 것도 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끝. 흠뻑 젖은 도복을 입고 나온 아이들에게 칭찬부터 해주고 옷을 갈아 입혔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는데 진인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대천명은 할 수 있게 됐다. 


다음날 워터파크를 가서도 엄빠는 두근두근. 서울로 돌아와서도 두근두근. 롯데월드타워를 가서도 두근두근. 그리고 지난 9일 저녁을 먹는데 엄마의 휴대전화로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다. 유준이와 우재 모두 합격. 품새는 엉성했고, 발차기는 더 엉성했지만 삼복더위에 땀 뻘뻘 흘리며 연습해온 공을 심사위원들이 잘 봐준 모양이다. 유준이의 얼굴에는 '그럴줄 알았다'는 자신감이, 우재의 얼굴에는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스며나온다. 그러나 가장 큰 안도감은 엄빠의 얼굴에서 나왔다. 이제 쌍둥이들은 9월달에 있다는 '1품티' 수여식을 기다린다. 


이제 빨간띠는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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