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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Apr 16. 2016

태몽

2015.11.28


아내와 함께 <응답하라 1988> 7회를 보는데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택이 아버지는 방송기자와 아들에 관한인터뷰를 한다. 아들 택이는 한국 최고의 바둑기사이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질문이 이어지다가 인터뷰 말미에 방송기자가 택이의 태몽, 태어난 시각, 돌잡이 등을 물어보는데 택이 아버지는 아무 대답을 못한다. 기억을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부인이 살아 있을 때는 택이에게 큰 신경을 쓰지 못했던 듯하다.

인터뷰를 끝낸 뒤 택이 아버지는 자책하며 금은방에서 혼자 소주를 마신다. 나중에는 선우 어머니가 와서 넋두리를 들어준다.

드라마를 보다가 우리 아이들은 태몽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다. 다행히 기억이 난다. 내가 꾸었으니까.

아직 임신을 몰랐을 때였는지, 아니면 쌍둥이인지 확인이 되기 전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여튼 신기한 꿈이었다.

꿈에 배가 나왔는데, 아주 탐스럽고 컸다. 그것도 2개. 아쉽게도 예쁘지는 않고 울퉁불퉁했는데, 또 다행히도 흠은 하나도 없었다. 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못생겼지만, 탐스럽고 맛있게 생긴 배였다.

쌍둥이로 확인이 된 뒤에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내용을 듣고는 꿈 속의 주인공을 ‘황금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흠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배가 더 예뻤어야 한다며 내 태몽을 ‘수정’했다. 동그랗고, 흠도 하나도 없고, 광택도 나는 황금배로.

그래서 내 태몽의 ‘감독판’은 아래 사진과 비슷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원본’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마도, 한참 뒤에는 이 ‘감독판’만이 나와 내 아내의 기억에 태몽으로 남을 것 같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사진은 구글에서 가장 예쁜 놈으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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