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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May 17. 2018

우재에게 '포코'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2018.05.17

우재가 엄마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중장비다. 아예 중장비를 이야기 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를 꼭 앞에 붙인다. 그래서 집에는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레미콘, 불도저 등 각종 중장비가 많다. 미니카부터 꽤 큰놈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우재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타요중장비'다. 치카치카 시간에만 유투브를 보여주는데, 우재는 항상 타요중장비가 나오는 영상을 택한다. 

타요중장비는 내가 봐도 이쁘기는 하다. 포크레인은 포코, 덤프는 맥스, 레미콘은 크리스, 불도저는 빌리 등등 각각 이름도 갖고 있다. 우재는 또 그중에서도 또 포크레인을 제~~~일 좋아한다. 


지난주였나. 아내는 방에서 빨래를 널고 있고, 난 거실에서 뭔가를 하다가 일어섰는데 발에 뭔가 밟혔다. '우지끈'이란 소리와 함께.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이라고 빌었지만...이승환과 오태호는 노래까지 불렀지 않은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냐'라고. '포코'였다. 포크레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그러니까 본체와 삽이 연결되는 막대가 똑하니 부러졌다. 


"자기야"라고 아내를 불렀다. 아내도 내 목소리와 눈을 보고는 장난이 아님을 알아챘다. "뭐야? 왜 그래?" 

아이들의 눈을 피해 부서진 포코를 보여줬다. "왜 그랬어...왜, 왜, 왜"

우선 포코를 눈에 안띄게 감추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또 빌었다. 우재가 더 이상 포코를 찾지 않기를. 


다행히 우재는 포코를 찾지 않았다. 우재가 포크레인 이야기를 꺼낼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는 했지만, 사력을 다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렇게 평화는 이어질 줄 알았다. 


오늘, 아내가 이런 사진을 보내왔다. 


이렇게 끼우면....어!!! 안되네!!!! 이게 뭐야!!!!

우재가 포코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포코의 죽음(?)을 확인한 뒤에는 서러운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한다. 

어찌 집에 가야할까. 홈플러스에 들러 똑같은 놈을 찾아서 사가야 하나 하고 있는데 아내가 그냥 들어오라고 한다. '다른 것 사주기로' 약속을 해서 진정시켰다고...


그래서 또 걱정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중장비를 고를지. 아마 이럴 때를 대비해서 봐둔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비싼놈으로. 

참고로 유준이는 그렇게 애정을 쏟는 장난감은 없다. 있다해도 모래놀이 삽이나, 아이스크림 숟가락, 콩순이 드럼에 딸린 북채 등 허섭스레기 같은 물건이 대부분이다. 얼마전에는 외할머니가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줄테니 골라보라했더니 우재는 또 중장비세트를 들고온 반면 유준이는 딱풀을 들고와서 모두를 안쓰럽게 하기도 했다. 그나마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잘 갖고 노는 공룡이 두마리 있다해서 어제 똑같은 놈으로 찾아 주문해두긴 했다. 그 공룡도 우재가 다 가져갈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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