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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May 07. 2018

"엄마 소리가 안나!"

2018.05.07

얼마전까지는 둥이들을 속이기가 참 쉬웠다.

과자를 너무 많이 먹는다 싶으면 슬쩍 숨겨놓고 "다 먹었다" 해도 속아넘어갔고, 유투부에서 한시간짜리 동영상을 선택해 보겠다고 하면 마지막 10분만 보여주고 "끝났다"해도 넘어갔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안된다.


둥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한 말 5개를 꼽아보라 하면 분명히 "엄마가"가 들어갈 것이다.

둥이들은 뭐든지 엄마가 해줘야 안심이 되나보다. 밥도 엄마가 먹여주면 더 좋고, 장난감도 엄마가 가져다줘야 하고, 응야하고 씼을 때도 엄마가 해줘야 한다. 이렇게 엄마를 찾으면 엄마는 더 힘들다. 특히 유모차를 엄마가 밀어야 할 때는 더욱 더.

예전에는 유모차를 엄마가 민다고 해놓고, 슬쩍 내가 밀었다. 걸릴 일이 없었다. 지들이 알 턱이 없지. 엄마가 움직이는 유모차 앞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됐다. 어린 둥이들이지만 유모차는 움직이고 있는데, 엄마가 앞에 있다면 "범인(?)은 아빠다!!!"란 사실을 안다.


그래서 요즘은 연기도 한다. 어제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하길래 둥이들 낮잠을 재우기 위해 유모차에 태워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엄마가"를 외쳤고, 처음에는 엄마가 밀었다. 그러다 슬쩍 아내를 앉아 쉬게 하고 내가 밀기 시작했다.

뭔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둥이들이 묻기 시작한다. "엄마 어딨어? 아빠는 어딨어?" 무시하고 계속 밀었지만 이러다가는 더 큰 아우성이 날 거 같아 과감하게 앞으로 나섰다.

"아빠 여깄지. 엄마는 뒤에서 밀고 있고. (뒤를 보며)그렇지 엄마? (다시 둥이를 보며)자 됐지? (다시 뒤의 허공을 보며)가자 엄마"

유준이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재도 별 의심을 안하는 것 같다. 다시 유모차를 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뒤 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소리가 안나. 엄마 소리가 안나. 엄마 소리가 안나"

이런 명탐정 코난같은 녀석들...결국 아내는 짧은 휴식을 마친 뒤 다시 유모차를 밀기 시작했고, 둥이들의 뇌세포 활성화만 유도한 탓에 낮잠도 실패했다.


어린이날 '거품따발총'을 선물로 받고 즐거워 하는 둥이들. 그리고 문제의 7일 오전 베란다에서 빠방을 타는 유준이와 뭔가 알 수 없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우재


어제는 비도 오고 심심해 하길래 베란다에 어릴때 타던 '빠방'을 꺼내줬다. 잘 타긴 했는데 시끄럽기도 하고, 베란타 턱 때문에 위험하기도 했다. 밤에 둥이들을 재운 뒤 베란다 창고에 다시 감춰뒀다.

오늘 오전 내가 출근한 뒤 유준이가 일어나자 마자 엄마에게 빠방을 내놓으라고 했단다. 엄마가 "고장났어"라고 했지만 일단 내놓으라는 유준이의 요구에 엄마도 항복. 그리고 빠방을 타면서 유준이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안 고장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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