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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Sep 16. 2018

괌 대신 사파리, 괌 대신 기차여행

2018.09.16

몇달전부터 계획했던 둥이들과의 괌 여행은 예상하지 못했던 태풍으로 무산됐다.

출발일 며칠전부터 태풍(22호 망쿳)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현지에서 안좋은 소식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항공료와 숙박비에서 모두 위약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지만, 둥이들을 데리고 태풍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출발 하루전에 가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공식적으로 비행기가 결항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야만 항공료와 숙박비의 위약금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었다. 

출발 하루전날인 지난 9일(일) 저녁에 결항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항공료는 물론, 숙박비까지 100%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일주일간의 휴가를 둥이들과 어떻게 보낼 것인가였다. 특히 '문래동 구름 마니아'인 유준이는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밤마다 엄마에게 언제 가냐고 묻고 있던 터였다. 


어쨌든 구름 위로 비행기를 날려야 한다는 생각에 동남아 휴양지나 제주를 급히 알아 볼 생각도 했지만 마땅치 않았다.  일단 둥이들에게는 "아주아주 센 바람이 와서 비행기가 날 수가 없다. 그래서 여행을 못가게 됐다. 대신 아빠가 일주일간 회사를 안가니 많이많이 놀자"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의외로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을 했다. 


가운데는 에버랜드에서 잠든 둥이들. 왼쪽 위는 청춘열차, 아래는 꿈자람어린이공원 실내놀이터 앞, 오른쪽 아래는 하남 스타필드 아쿠아필드, 위는 둥이들 잠든 틈에 간 올드문래


아내와 일주일 중 최소 3일은 놀러나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럼 어디로 가야할까. 

월요일에는 에버랜드로 떠났다. 둥이들은 물론 아빠도 가보지 못한 동물 사파리가 있는 곳. 아침에 서두른다고 했지만 도착하니 오전 11시가 넘었다. 

어차피 엄마아빠는 놀이기구에 별 관심이 없고, 둥이들도 아직 탈 때는 안됐으니 당초에 목표로 했던 사파리로 바로 직행. 가는 길에 호랑이와 펭귄 등도 보면서 쉬엄쉬엄. 

에버랜드 사파리 월드는 초식동물들이 나오는 곳인줄 알았는데 가보니 육식동물들. 호랑이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우와우와'를 외치다 보니 15분이 끝났다. 엄청나게 큰 호랑이와 사자도 가까이서 보고, 건빵 먹고 춤추는 곰도 보고, 둥이들도 약간 무서워했지만 재밌게 봤다.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초식동물들이 사는 로스트밸리로 이동. 이곳은 기다리는 줄 중간중간에 동물들이 있어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평일이라 그렇게 줄이 길지도 않았고. 둥이들이 '버스배'라고 한 수륙양용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구경. 하이라이트는 나뭇잎 받아먹는 엄청 큰 기린의 얼굴과 입. 


사파리 두곳을 돌았더니 이미 반나절이 지났다. 둥이들보다 40평생 처음으로 사파리에 와본 아빠가 더 흥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에버랜드까지 왔으니 회전목마라도 한번 타볼까 하고 유모차로 이동하는데 둥이들 모두 곯아떨어졌다.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다행히 모두 기상해서 제주 올래국수로 저녁까지 마무리한 완벽한 하루. 


두번째 날. 새벽에 유준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열이 나는 바람에 해열제를 먹고 자다깨다를 반복. 아침에 보니 컨디션이 회복된 것 같아 계획했던대로 하남 스타필드를 향해 떠났다. 

이곳에 있는 아쿠아필드는 작지만 야외풀장과 실내워터파크가 모두 있다. 아담해서 둥이들이 놀기에 딱 좋았다. 유준이가 좀 추워하는거 같았지만 중간중간 온수풀에서 몸을 녹여주니 잘 놀았다. 야외풀만 있는 고양 스타필드로 갈까 고민하다 하남으로 왔는데, 실내로 오길 백번 잘한것 같다. 야외는 햇볕이 있어도 쌀쌀해 수영을 했다가는 감기 걸리기 십상이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보트피플 우재'. 물도 무섭고, 슬라이드도 무서워 계속 아빠와 밖에서 놀던 우재가 멀리서 엄마와 첨벙거리는 유준이를 보고 자극을 받는 모양이었다. "아빠. 나도 유준이처럼 해볼래요". 그래 가자. 작은 보트에 태워 밀고 당기며 놀아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나게 놀았다. 특히 작은 다리 밑을 지날 때마다 터널로 간다며 소리를 질렀다. 

점심으로 자장면과 탕수육, 우동을 사먹고 조금 더 놀다 나가니 이곳은 쇼핑몰. 엄청 큰 장난감가게 앞에서 둥이들 입이 벌어졌고, 공룡 메카드의 디메트로돈과 친타오사우르스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저녁으로 갈비탕까지 사먹고 다시 귀가. 그러나 이날 일정이 좀 무리였던 모양이다. 유준이가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셋째날은 오전에 병원행. 다행히 목이 좀 부은거 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집에서 놀고 쉬다를 반복하다가 저녁에는 이모, 이모부, 사촌누나와 함께 외가댁으로 가서 저녁 얻어먹기. 


넷째날은 뭐할까 고민하다가 기차여행으로 잡아봤다. 둥이들이 가기에 딱 좋은 코스가 있었다. 바로 ITX-청춘열차, 이름하야 '춘천가는 기차'. 시간도 1시간10분 정도로 적당했고, 무엇보다 춘천역 앞에는 춘천시가 운영하는 '꿈자람 어린이 공원'이 있다. 실내놀이터가 1~2층으로 되어 있어 시설도 널찍널찍하고, 사람도 그닥 많지 않고 둥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2시간을 넘게 놀고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우재에게 어려움이 생겼다. 아빠를 닮아 택시를 타도 멀미를 하는 우재의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됐다. 10분 정도 가는 택시안에서 졸기 시작(사실은 멀미)하더니, 결국 닭갈비를 앞에 두고 토를 해버렸다. 다시 신나게 김과 밥을 먹기에 괜찮은지 알았는데, 가는 길에 또 택시를 탔더니 멀미가 다시 온 모양이었다. 

미리 열차에 탔다가 다시 내려서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아무래도 비닐봉지를 하나 준비해둬야 할 것 같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우재는 다시 괜찮은 듯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급기야 엄마품에 안겨서 닭갈비집에서 먹은 김과 밥을 모두 토해냈다. 준비해둔 비닐봉지도 타이밍을 놓치니 별 소용이 없었다. 엄마와 우재의 옷은 모두 토사물로 엉망이 됐고, 열차 안에서 냄새는 풀풀나고. 토사물을 대강 닦아낸 뒤 엄마가 우재를 꼭 안았다. 아빠 손수건으로 토사물 뭍은 곳을 덮고, 우재의 점퍼로 다시 아이를 감싸니 냄새는 그닥 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재는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다. 

지하철로 가느냐, 우재가 다시 멀미를 하더라도 신속하게 택시로 이동하느냐. 그래도 택시가 낫지 싶어 용산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20여분쯤 걸려 도착. 유준이를 먼저 씼기고, 잠든 우재를 깨워 머리까지 감겨 다시 재우니, 하루가 끝났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가정의 날. 아빠엄마와 놀이터를 가고, 엄마가 꺼내준 새 클레이를 가지고 베란다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더 외출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엄빠의 체력은 이게 한계인가 보다. 


휴가기간 8일 내내 아이들과 함께 했다. 엄마아빠가 하루에도 10번씩 큰 소리를 내게 할 만큼 말을 안듣고 떼를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귀엽고 예쁜짓을 하는 게 그보다 훨씬 많다. 

가끔씩은 둥이들이 부쩍 커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손을 씼기려면 세면대 앞 받침대에 서서도 까치발을 들어야 간신히 물을 묻힐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도꼭지까지도 손이 닿는다. 

사촌누나가 그네 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던 유준이는 이제 그네에 타서 아빠에게 "더 세게, 더 세게 밀어달란 말이에요 아빠"라고 외치고, 아빠 손을 잡아야 미끄럼틀을 간신히 내려왔던 우재는 이제 혼자 계단으로 올라가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내려온다. 


비록 괌은 못갔지만 나름 알찬 휴가였다. 그래도 다음 휴가때는 꼭 비행기에서 구름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어 계획을 세웠다. 오키나와다. 태풍이 없는 1월로 잡아봤다. 그때는 꼭 나갈 수 있기를. 유준이가 비행기 날개 아래로 구름을 보고 신나할 수 있기를, 우재는 조금 더 대담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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