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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Mar 11. 2019

유모차 시대의 종말

2019.03.11

가방이 무거워 힘든 우재와 쿨한 유준이

오늘은 쌍둥이들에게 나름 의미있는 날이다. 드디어,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했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을 보니 나도 학부형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제 현관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유모차를 접어 베란다로 치웠다. 아침 출근길마다 가방이 걸리고, 신발 한번 신으려면 허리를 비틀어야 했는데, 이제 해방이다.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현관 구석에 휴대용 유모차를 접어 세워뒀다.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유모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등원하기로 한 것은 아니다. 내일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교체공사에 들어간다. 한달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다. 그 동안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밖에다 세워둘 곳도 마땅치 않다.  


며칠전 아내가 우재에게 가방을 메어보자고 했다. '빈'가방을 멘 우재는 무겁다고 난리를 쳤다. 혼자서 앞으로 막 고꾸라진다. 헐리우드 액션이 따로없다. 빈가방이 무거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녀석이 집안에서 놀때는 뽀로로나 토마스 가방에 공룡을 잔뜩 채워서 잘도 메고 다녔다.


오늘 아침에 다시 한번 권유를 해봤으나 헐리우드 액션은 여전했다. 결국 아내가 두 녀석의 가방을 큰 에코백에 넣어 가져가기로 했다. 오늘은 아내가 운동을 가는 날이기도 해서 가방만 3개였다. 


지하철에 내리니 아내가 사진을 보내줬다. 열어보니 두 녀석 모두 가방을 메고 공원을 가로지르고 있다. 유준이가 멘다고 하니 우재도 따라 멨다고 했다. 그러나 표정을 보니 우재는 후회막심이다. 무거워 죽겠다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있다.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엄빠가 모든 짐을 들어줄 수도 없는 것이고. 어쩌겠나. 애들이 씩씩하게 이겨내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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