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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Jan 05. 2020

이길 방법이 없다

2020.0105

얼마전 아내가 아이들에게 새로운 정책을 하나 발표했다.

이른바 '1대10' 정책. 새 장난감 1개를 사려면 기존의 장난감 10개를 버려야(다른 동생에게 줘야 한다고 순화해서 표현)한다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이다. 

사촌형과 누나들에게 잔뜩 물려받은 장난감에 때마다 사준 슈퍼윙스, 폴리, 고고다이노 등등해서 집에는 아이들 장난감이 넘치고 또 넘친다. 수납장에 잔뜩 들어있고, 놀이방과 거실 곳곳에도 널려있다. 

아내가 조금씩 조금씩 버리거나 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걸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종량제 봉투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녀석도 있다. 


이 정책은 지난해 발표되었지만 그 시효는 올해부터 적용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믈과 생일 선물에까지 매정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그제 아이들과 서점에 갔다가 장을 보러 아래층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장난감 코너에도 가서 구경을 하는데 유준이가 애니메이션 미니특공대에 나오는 '티라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주일 새에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 선물을 모두 받았으니, 양심상 사달라는 말은 못했다. 이 장난감은 며칠전에도 마트에 가서 계속 들고 다녔다는 그 장난감 되시겠다. 


사달라는 말을 입 대신 온몸으로 표헌하고 있다. 


나야 매정하게 그냥 데리고 나갈 수 있는데, 마음 약한 아내가 먼저 무너졌다. 아이들이 사달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1대10 조건을 제시했다. 

유준이는 눈이 휘등그레 졌다. 바로 10개를 동생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유준이만 사줄 수 없어 우재에게도 하나 고르라고 했다. 미니특공대의 티라카와 프테릭스가 선택 받았다.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다시 확인을 받았다. 10개를 골라서 보내줘야 한다고. 그런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 오니 말이 달라졌다. 시간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10개를 못 고르겠단다. 하루에 1개씩 고르겠단다. 아내와 내가 입을 모아 말했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날래날래 고르라우!!!"


선택을 잘 하지 못하기에 바퀴빠진 자동차 위주로 고르도록 유도했다. 그 와중에 우재는 아주 멀쩡한 포코(타요 시리즈의 포클레인)를 골라와서 엄빠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어찌됐든 10개를 채웠다. 


각자 10개씩 넣은 주머니를 놓고 아내가 "그동안 잘 놀아준 장난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다. 아내는 이 말을 하면서도 뒤에 닥칠 일을 전혀 예상 못한 듯 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준이가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우재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가 따라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당황했다. "어...그렇게 슬퍼? 그럼 5개만 고르자...아니 2개만 보내자"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2개씩 골라서 보내기로 했다. 합쳐서 4개면 집에 있으나 마나한 분량이다. 하나마나한 정책이었단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장난감을 지켜냈고, 또 새 장난감을 손에 넣었다. 아이들이 잠든 뒤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우리가 또 당한 것 같다...."


생일선물도 당겨서 받는 녀석들에게 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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