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를 옮기며 새로이 맡게 된 업무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예비 창업자부터 업력 7년 이상의 기업 성숙기까지, 성장 단계별로 해외 마케팅이나 제품 경쟁력 향상을 위한 예산을 지원했다. 공무원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익숙한 포맷의 사업이었다. 창업기업 지원 사업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뽑히는 중소벤처기업부의 ‘TIPS 프로그램’(민간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을 모방하여, 사업 고도화 등 예산부터 융자, 펀드 등 금융까지 소관 분야를 지원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사업의 집행을 담당하는 공공기관 직원과 상견례를 하는 자리였다. 혼자 올 줄 알았는데, 직원의 뒤로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2명의 남녀가 뒤따랐다. 그들은 국내 굴지의 컨설팅 업체에 소속된 본부장과 팀장으로 지원 사업의 운영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며, 공공기관 담당자 대신 지원 사업의 자세한 내용을 설명했다. 따로 PPT까지 만들어 설명할 정도로 열성이었는데, 설명이 다소 긴 게 좀 흠이었지만 준비한 PPT만큼은 공공부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잘 준비된 프로의 실력이었다.
그들은 정부 지원 사업의 PMO(Project management office)를 맡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 사업도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는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처음 들어본 단어가 생경하여 ‘PMO가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PMO란 프로젝트를 관장하고 조정하는 책임을 진 주체로서,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황 모두를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는 장황한 설명을 했다. 내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공공기관 직원이 대신 설명했다.
“지원 기업 선정부터 사업 마무리까지, 컨설팅 업체에서 전반적으로 다 운영하고 관리해 주신다고 보면 돼요.”
쉽게 이야기하면 중앙부처에서 공공기관으로 하청을 준 지원 사업의 집행 업무를, 공공기관에서 컨설팅 업체로 재하청을 준 셈이었다. 재하청의 명분은 이랬다. 단순히 예산 집행에 필요한 잡다한 일을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컨설팅 업체가 전문성을 갖고 지원하는 기업의 경영 상황 등에 대한 전반적인 조언자의 역할을 겸한다는 논리였다. 이를 위해 컨설팅 업체에서는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사업 전담 인력을 보강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중소기업 지원 예산을 집행하는데 공공기관 담당자 1명, 컨설팅 업체 2명, 전담 인력 1명 등 총 5명의 인력이 달라붙는다는 소리였다. 대략 이에 필요한 인건비, 여비, 운영비 등을 계산해 보면 전체 사업비의 10~15% 수준. 전체 사업비가 100억 원이라면 사업을 관리하고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비용만 10~15억 원이 책정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 복잡한 구조를 가진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예산 집행에 있어 각자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사업이 집행되는 내내 각자의 역할을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공공기관 담당자는 지원 기업을 선정하기 위한 평가 심사 위원을 추려내고, 그들에게 심사 수당을 지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일정에 맞게 사업이 진행되는지를 파악하여, 중앙부처 담당자인 내게 보고했다. 지원 기업 선정 평가나 사업 결과 평가와 같은 주요 일정을 심사위원 및 중앙부처와 조율하는 역할도 그의 몫이었다.
나머지 집행 업무는 모두 PMO, 즉 컨설팅 업체의 몫이었다. 지원 기업의 선정을 위해 개별 기업들의 필수 서류 제출을 확인하고, 계량 평가에 대한 실적을 검증하며, 지원 협약 체결에 필요한 일 모두를 담당했다.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 역시 업체의 몫이었다. 사업의 일정에 맞춰 지원 기업들이 예산을 활용하도록 안내했고, 지원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예산이 집행되고 있는지 점검단을 운영했다. 마지막으로 지원 사업의 평가와 응대도 그들의 몫이었다. 사업의 KPI(핵심성과지표)가 달성되었는지에 대한 서류 작업을 진행하고, e-나라도움 등 국가 예산을 사용하기 위한 절차 등에 대한 문의와 민원도 담당했다.
PMO에서 이 모든 일을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건 사업을 위해 컨설팅 업체에서 뽑은 전담 인력이었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전문 인력을 뽑겠다는 애초의 설명과는 너무 다르게,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8개월짜리 인턴이었다. 미팅에서 만나는 본부장과 팀장은 실무보다 주로 대관 업무를 맡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각종 정부 지원 사업의 PMO 선정을 위한 각종 입찰 등을 주로 챙겼고, 실제로 지원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중앙부처 사무관이나 공공기관 담당자에게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단순히 설명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그들은 이 사업 이외에도 맡고 있는 다른 정부 지원 사업이 많다며 늘 바쁜 척을 했고, 실제로 예산이 지원되는 중소기업과는 그다지 접촉이 없어 보였다.
결론적으로, 예산 집행에 진짜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8개월짜리 인턴 1명이었다. 본부장과 팀장이 하는 각종 대관 업무는 사실 이 사업의 예산 집행이나 관리와는 무관했고, PMO에 재하청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공공기관 담당자의 역할도 미미했다. 일의 규모와 각자 맡은 역할을 고려했을 때, 이 사업은 공공기관 담당자가 직접 예산을 집행하거나 공공기관이 인턴을 고용하여 사업을 끌어나가도 충분한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 사업은 5명이 아니라 1~2명의 인력으로도 충분히 집행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투자하거나 재정을 지원하여 설립한 기관으로 중앙정부가 직접 다하지 못하는 기금의 관리나 산업을 진흥하는 집행 업무 등을 맡는다. 나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행정의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무원은 무한정 늘릴 수 없으니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책 집행의 역할을 맡겼다. 쉽게 말해, 중앙정부가 머리라면 공공기관은 손과 발이다. 그런데 직접 정책을 집행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이 다시 그 역할을 외주로 주는 시스템이 현장에선 너무 흔해졌다. 공공보다 민간에 더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민간이 정책 집행도 더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신화를 등에 업고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신화와 달랐다. 대관 업무를 주로 하는 컨설팅 업체의 본부장과 팀장의 전문성은 둘째치더라도, 대학을 갓 졸업한 8개월짜리 인턴에게 무슨 대단한 전문성을 기대 하겠는가? 차라리 업계와 오랜 기간 호흡하는 해당 분야의 공공기관 직원에게 전문성을 기대하는 것이 더 상식적이었다.
그런데도 날이 갈수록 정책 집행의 외주가 늘어나는 건, 관련된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잡다한 일과 민원을 줄이고, 컨설팅 업체 등은 ‘정책의 집행을 운영, 관리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여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 부처 입장에서도 잘만 포장하면, 국회와 언론 등에 민간을 활용하여 전문성 있게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전달 할 수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사회의 몫이다. 예산 집행에 드는 비용만 증가하여 세금만 낭비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무서운 건 정책 집행의 외주 비용이 국가 전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보통 이러한 비용은 지원 사업 예산 내에 민간 이전이나 용역비 형태로 일부 녹아져 있기 때문에, 예산의 각목 명세서를 하나하나 전부 뜯어 보아도 그 규모를 쉽게 알 수 없다. 다만, 국가 용역 계약의 입찰 창구인 ‘나라장터’에 접속하여 ‘운영’, ‘관리’라는 이름으로 검색하여 페이지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결과를 바탕으로, 그 비용의 규모가 만만치 않은 수준임을 추론할 뿐이다.
예산의 낭비보다 더 큰 문제는 직접 해보아야 습득하는 지원 사업의 암묵지(Tacit Knowledge)가 공공부문에는 전혀 쌓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어르고 달래가며 사업을 이끌어야 지원이 더 필요한 사안과 축소하거나 없애도 될 부분에 대한 판단이 서는데, 컨설팅 업체에 의존하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같은 사업을 10년을 한들 공공부문에 지원 사업의 전문성이 쌓일 수가 없는 구조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국회나 예산 당국에서 지원 사업의 성공 사례를 물으면, 답변이 궁색할 정도로 성과도 좋지 못하다. 성과가 좋지 않은 사업은 마땅히 구조조정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 지원 사업은 거꾸로다. 업계가 어렵다는 막연한 논리와, 지원의 양만 늘리면 성과도 좋아진다는 안일한 믿음을 기반으로 지원 사업의 예산 규모는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담당 공무원조차 그게 해답이 아닌 줄 알면서도 말이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지원 사업의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 구조를 인지하고 나서도 이를 뜯어고치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뜯어고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중앙부처 담당자 입장에선 지원 사업의 구조를 효율화하여 예산을 감축하면 오히려 질책을 받기 때문이다. 각 부처는 해당 분야의 예산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체부를 예로 들면, 오래전부터 ‘문화재정 2%’라는 목표가 있다. 현재 1% 초반인 국가 전체 예산 대비 문화예술체육관광 예산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2%까지 늘려야 한다는 목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산을 2배로 늘려도 모자랄 판에, 눈치 없이 예산을 자발적으로 줄이겠다고 하는 직원이 상사의 눈에 과연 어떻게 보이겠는가?
PMO 대신 잡다한 집행 업무를 해야 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본래의 역할을 해야 하는 공공기관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은 평소엔 갑을 관계로 보이지만, 공공기관은 위기 상황이 오면 노련한 전관을 활용하여 중앙부처를 압박한다. 전무니, 본부장이니 하는 공공기관 최상위에 포진하고 있는 중앙부처 출신의 전관이, 자기 후배인 국장, 과장에게 서운하다며 은근히 감정을 드러내는 식이다. 솔직히 말해, 무슨 일을 하든 같은 월급을 받는 공무원 입장에서 이 모든 역경을 뚫고 얻는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기획재정부에 의하면 ‘23년 기준 국가채무는 1,100조 원에 이른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는 이제 50%를 넘어섰다. 참고로, 2018년에는 35% 수준으로, 그 증가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빠르게 늘어나는 나랏빚을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국고보조금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보조금관리위원회에서 폐지나 감축이 필요한 사업을 걸러내는 식이다.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폐지보다는 감축이 부작용이 적다. 사연 없는 무덤 없듯이 완전히 필요성이 없는 지원 사업은 많지 않고, 업계의 반발 역시 폐지보다는 감축이 견딜 만하다. 완전히 사업을 날려버린 R&D 사업 구조조정이 남긴 후폭풍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리하게 예산을 감축하기 위해선 예산의 내밀한 비밀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비밀은 실제로 사업을 담당하는 실무자만이 알고 있다. PMO 등에 정책 집행을 재하청하여 소요되는 쓸데없는 예산처럼, 어떤 항목의 예산을 감축해야 지원받는 업계의 반발은 없고 낭비는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진정으로 정부가 예산을 아끼기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싶다면, 앞으로는 관행과는 달리 예산을 감축하는 공직자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일 잘하는 공직자의 기준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과거의 사회와, 규모가 수축하며 내실이 요구되는 현재의 사회에서 같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