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한동 Sep 10. 2024

에필로그

  군 복무를 서산에서 했다. 행정고시를 붙고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장교로 입대하여 남들보다 늦은 나이였다. 서울엔 아내와 돌쟁이 딸이 있었다. 장교는 근무 시간이 아니면 부대 밖 출입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근무를 마치는 금요일 밤에 서울로 올라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 밤에 서산의 부대로 복귀하는 생활을 한동안 지속했다.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아기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아내를 서울에 두고, 주말의 끝에 혼자 서산으로 내려가는 마음은 언제나 아렸다. 


  그날도 아쉬움을 안고 서산으로 돌아가던 겨울밤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땐 날씨가 맑았는데, 서해안고속도로를 타자마자 예보에도 없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서해안 인근의 날씨는 이미 익숙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눈이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택 부근에서 서해대교를 타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눈에는 서해안 날씨에 익숙한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흡사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서 주인공이 오디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다 길에, 악천후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차로 고양이를 치고야 마는 그 밤의 날씨 같았다. 


  전방의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눈이 오는 악천후에서 운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비상등을 켠 채로 엉금엉금 기어가며 내 앞에 차가 급하게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피하려고 했지만, 휴게소에 진입하는 램프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심했다. 앞으로 가기엔 두렵고, 멈추자니 사고를 유발할 것 같은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관성의 법칙에 운명을 맡기고 액셀을 천천히 밟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급하게 멈추어 서거나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차가 없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고 없이 서산의 부대에 무사히 도착했다.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전방의 시야를 조금이라도 유지하려고 운전석 시트를 바짝 당겨 앉아 긴장한 자세를 몇 시간이나 유지한 탓이었다. 하지만 잠을 청하려 자리에 누워도 각성 상태가 지속되어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공직사회가 처한 상황은 그날 밤의 운전 같았다. 정책의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정책을 둘러싼 환경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앞이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관성적으로 해오던 방식대로의 수행에 불과했다. 시야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정책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어딘가에서 터질까 전전긍긍이었다. 하지만 해오던 방식을 포기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까 두려워 과감히 멈추지도 못했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버티다 보면 공직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별 탈 없이 정년이라는 톨게이트를 통과했지만, 사실 그건 오로지 운의 문제였다.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처럼 운이 좋지 않은 타이밍에 정책의 운전대를 잡았던 공무원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내상을 입고 내쳐졌다.


  공무원은 대체로 억울함을 토로한다. 운전사가 아무리 긴장한 상태로 잘해보려고 노력해 봐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는 상황에선 더 잘 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관료의 항변에 일부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무능하고 때로는 위법과 탈법을 교묘히 넘나드는 집권 세력, 단기적인 시야에 매몰되어 포퓰리즘에 가까운 의견을 쏟아내는 여론, 그리고 그걸 증폭하는 언론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입장에서 만만치 않은 환경임은 사실이다. 


  물리적으로 자존감이 무너질 때도 있다. 고유가 시대에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여름엔 셔츠가 다 젖고 겨울엔 손이 시려 타자를 치기 어려울 정도로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청사에 앉아 있다 보면, 아무리 국민의 공복이라고 해도 한 명의 근로자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화가 나고 일의 의욕도 잃는다. 


  하지만 반대로, 관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짜 일을 잘해보려고 노력하는가? 혹은 어려운 상황을 능숙하게 헤쳐 나갈 실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고 있는가? 나는,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윗사람의 심기를 보좌하는 데 익숙하고 남이 써 준 자료에 의존하며 진짜 일은 등한시하는 공무원은 어려운 정책의 환경과 관계없이 공직 사회의 무능한 시스템이 길러내는 결과물이다. 옛 동료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정치인의 실력과 선의를 믿지 않는 만큼 관료의 그것 역시 믿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0년 이상 공직자로서 나라의 녹을 먹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관료로서, 내가 이것만은 사회에 기여했다고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이제 공무원도 아닌데 굳이 책까지 써가며 공직사회를 비판할 필요가 있겠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인생의 선배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겐 ‘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퇴직 관료로서 친정에 잘 보여야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을 텐데, 공개적으로 공직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내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인지에 대해 고민한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다양한 헛짓거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10년 이상 세금으로 월급을 받은 공직자로서 나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공직사회가 겪고 있는 붕괴 현상은 단순히 처우의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의 월급을 올린다고 해서 공직사회의 체계적 무능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 책이 앞으로 공직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