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비행일기
새해 첫 비행은 보스턴이었다.
많고 많은 미국 도시들 중에서 보스턴은 한 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이유는 호텔 위치도 좋고, 비행도 좋고, 데스티네이션도 좋아서
미국 비행을 하는 크루들이 선호하는 비행이라고 한다.
매 달 비행 스케줄이 나오기 전, 그 다음 달 비행을 신청하는
비딩 시스템이라는게 있는데, 그걸 통해서 보스턴 비행을 신청했다.
그리고 나왔다!
그것도 무려 같은 건물 사는 동생, 지난 달에 함께 교육 받았던 동생이랑 같이 말이다.
비행 스케줄이 나오자 마자 신이 난 동생들이 '언니 우리 다음달 비행 같이가요!' 하고 연락이 왔었다.
마음 맞는 동생들이랑 같이 비행하는 거라 나도 엄청 설렜다.
며칠 전 무쉐립에서 찾은 검은콩 두유 3팩, 밥통에 구운 계란 3개 챙겨서 보스턴으로 출동!
오랫만에 비행 1년 넘게 한 크루들이랑 미국 비행을 했다.
그 말인 즉슨,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서로가 해야할 일을 먼저 하고 있었다.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진다는게 이런 비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싶을 정도였다.
마음에 안드는 부분들은 입밖으로 꺼내기 보다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감사하며
힘든 부분은 승화시켰다.
우리가 진정한 위너라며 어깨를 서로 두들겨 줄 정도로.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도 오랫만이다.
하지만 나는 뉴욕에서 날 보러 오는 행님이 있어서..
그 저녁모임에 함께 하지 못했다.
# Legal Sea Foods
행님이 식당을 추천했다.
함께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명소보다는 음식으로 기억을 하는 사람이 가보자고 한 곳이면, 믿고 따라가 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Clam Chowder라는 조갯살이 들어간 크리미한 스프와 맥앤 치즈 랍스터, 그리고 구운 대구를 먹었다.
해산물이니까 나는 샤도네이도 한 잔 했다. 춥지만 포기 할 수 없는 와인 한 잔!
비행기에서 손님들 따라 주면서 나도 얼른 랜딩해서 한 잔 마시고 싶었는지 모른다구.
신기했던 것은 맥앤치즈 랍스터의 가격표에는 market이라고 적혀있었다.
시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주문한 랍스터는 날씬한 랍스터여서 살이 많이 없었다.
뒤지고 뒤졌는데도 살이 몇 점 나오지 않아서,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자
매니저가 따로 랍스터를 섞어 먹을 수 있게 가져다 주셨다.
서비스 리커버리는 이렇게 하는 것인가, 노련함과 직접 음식을 가져다 주시는 모습에 프로페셔널함을 느꼈다.
이 직업병.
지난 달 뉴욕에서 Shit happens, coffee helps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았다.
이런 글귀를 적는 사람들, 만나보고 싶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이런 모먼트를 글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순발력과 기발함에 순간을 기록해본다.
언젠가 나도 이런 순간을 짧은 문장으로, 글로 잘 풀어내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오픈 키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유지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직업병 .. 슬금슬금 올라온다.
나도 비행기에서 일을 할 때, 손님들의 음식이 준비되는 공간은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자꾸만 어지럽히는 동료들이 있으면 하다가 포기하긴 하지만,
음식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와 행님은 같은 장소에 와서도 정반대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나는 가득 쌓인 빵들로 손님들을 맞이하려면 얼마나 이른 시간부터 준비를 했을까
행님은 음, 이정도로 준비를 했으니 손님이 많이 오고 돈을 많이 벌겠지. 맛도 좋네.
처음엔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만큼 이성적인 대답에 나랑은 정말 안 맞다라고 생각을 했다.
5년 넘에 만나다 보니, 안 맞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다르게 생각을 하는 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전 입에 커피도 안마시는 사람이
밥 먹고 커피마시는 나를 위해 스타벅스의 위치를 찾고,
브런치 카페에 앉아서 아침을 함께 먹어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얼마나 더 마셔야 하냐고 묻는거 빼고는 .
#Quincy Market, public market.
다른 도시에 오면, 이 곳의 시장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보스턴 시내에 Quincy Market, Public Market이 있었다.
아침을 먹고 공원을 지나 산책을 하면서 퀸시마켓 까지 걸어가보기러 했다.
청솔모가 보였다!
얼마만에 보는 것인가! 도심 속에서 보리라고 기대를 못했기에 더 반가웠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연말 분위기가 좋았다.
중동에서는 이만큼의 장식과 연말 분위기를 못느꼈으니 더 느껴라~ 받아라~
조금 이른 시간대에 도착해서 가는 길목도 마켓 안도 한산했다.
기념품을 파는 곳과 식당들이 대부분이었다.
랍스터롤을 먹고 싶었지만, 30분전에 먹은 왕만한 크로와상과 커피 한 솥이 아직도 소화가 되지 않아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직장인들이 하나둘 씩 몰려드는게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이 되기 전에
얼른 다음 마켓으로 넘어가보자고 했다.
퍼블릭 마켓은 오가닉 제품들과 푸드코트가 있었다.
여기도 점심 장사를 준비하느라 모든 가게들이 바빴다.
나의 눈길을 사로 잡은 가게가 있었다. 파스타를 만들어서 파는 집인데
에코백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씩 다 사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에코백이 2개나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잘 참았다. 칭찬해.
청년들이 갓 구운 베이글을 만들어 내 놓는 푸드코트가 있었다.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았고, 출근 전에 무언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베이글과 치즈 크림을 따로 담아 달라고 그랬다.
보통 비행이 끝나고 나면 행님과 비행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내가 비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면 정말 좋았거나, 메디컬이 있거나.
보스턴 비행에 함께 한 한국 크루 동생들이 좋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나보다.
비행 가서 동생들도 하나 씩 주라고 베이글을 포장해준다. 고마워.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 시간 넘게 걷고 나니 두통이 올 것 같았다.
초록색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하철 티켓을 사는 곳에, 빨간 라인에 하!버!드! 역이 있었다.
그래, 다음엔 하버드 대학 구경을 가봐야겠다.
든든하게 챙겨먹고 돌아오는 비행도 평화로웠다.
내가 일하는 존에 7개월 된 아기와 비행하는 두 가족이 있었다.
제일 첫 줄에 앉아야 베시넷(기내에서 설치할 수 있는 아기 침대)를 설치할 수 있는데,
둘째 줄을 받는 바람에 14시간 동안 아기를 안고 비행을 해야했다.
딱 두 자리 남아 있는데, 가운데 자리라서 손님들을 이동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아기들 이름 불러주며, 비행 중간 중간 아기와 함께 하는 가족들이 필요한 건 없는지 중간중간 확인해 주는 것 뿐이었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혹여나 아기에게 쏟을까봐 커피도 안마셨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기 엄마, 아빠한테 설탕 우유 섞어서 커피 한 잔씩 주고
다음 연결편 비행때에는 이번 비행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어떻게 해야할 지 알려주었다.
괜찮다고 마음써줘서 고맙다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가족들 덕분에, 더 챙겨주고 싶었다.
도하로 랜딩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기내 안전 점검을 하고 있었다.
아기들이 좌석벨트를 안전하게 잘 맸는지 확인하는데, 아기가 내 손을 잡는다.
이 비행이 아기들의 첫 비행이라고 한다.
"나중에 랜딩하고 나면 인사하러 못 올 수도 있어. 너무 어려서 기억은 못하겠지만, 내가 너희들의 첫 비행 승무원이어서 영광이야." 라고 내가 말했다.
주변에 앉아계신 승객분들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점잖게 14시간 비행하는 아기는 처음이야. 아기 엄마 아빠도 수고 많았어요."
매 비행이 보스턴처럼 좋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을 것을 안다.
그런 비행에서는 보스턴 비행을 꺼내보며 이런 비행도 있고 저런 비행도 있지 하고 웃어넘길 수 있길.
새해 첫 비행, 처음 가 보는 데스티네이션, 귀여운 아가 승객들의 첫 비행의 순간까지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