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포스팅을 보면, 승진을 마치고 그리고 내 안의 나와 잘 지내겠다는 2인조 독서서평이었다.
그리고 약 10일 정도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F1 포지션으로 바쁘게 비행을 했다.
4년 동안 했던 일이지만, 그 사이 일 하지 않은 기간도 그만큼
길었던 만큼 버퍼링이 걸리곤 했다.
그래도 큰 서비스 프로시져는 바뀐게 없어서 괜찮았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어서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재미가 없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사막에 비가 한 번 더 내리고나면 곧 더위와 라마단이 찾아 올 거라고 해서, 친구들과 노을 보러도 갔다 왔다.
나를 기다려주는 행님이 있는 JFK 비행도 다녀왔다.
지난 번에 가보지 못한 식당에 가서 행님이 맛있는 저녁도 사줬다.
새벽에 일찍 출근을 해버려서 우리의 첫 미술관 데이트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하늘 맑은 발리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동생과 만나 밤새 수다를 떨었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와 지난 달에 함께 비행을 했다.
비행에서는 이야기 할 시간이 없어, 언니와 함께 루사일에 갔다.
같이 밥을 먹고, 루사일에 새로 생긴 곳을 구경했다.
언니한테 요즘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목표하던 것들은 이루었는데, 또 언제 교육이 시작될지 몰라 한 달, 두 달 시간은 흘러 간다.
무엇을 공부해야하고 읽어야 할 지 주어지면 또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을 것 같은데.
메디컬과 자격증 갱신 해야할 기간이 다가오니 생각이 많아진다.
두 가지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첫 번째는 내 눈앞에 당장 이루어야 할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단기간으로 몇 달씩 짧게 계획해서 이루고
그걸 난 즐겨왔던 것 같다.
두 번째, 사실 이게 첫번째 이유보다 더 큰 것 같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은 것.
내가 힘들면 좀 쉬면 되는데,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누구도 나한테 강요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자꾸 나를 부추겼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태로, 나는 무기력해주겠는데 비행에서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웃는데 힘들었다.
나는 즐겁지 않은데 웃어야하는게 힘들었다.
내 존에 앉은 손님들에게는 촛불까지 켜 주면서 밥을 챙겨주는데
내 밥은 그냥 대충 챙겨먹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 모든게 복합적으로 터져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인천 비행이 나왔을 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보고 싶었지만 그냥 쉬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에프원 경기 보면서, 침대에 누워서 맥주 한 캔 하면서
한적한 시간에 내가 필요한 책 사고, 쇼핑도 했다.
인천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제약을 걸어 둔 것은 wake up call, pick up 타임 뿐이었다.
그 외의 시간은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두었다.
매일 비행가방이며 머리 맡에 두던 PDS다이어리를 다시 들었다.
텅 빈 며칠도 봐주기러 했다.
좀 봐주고, 좀 내버려 두는 그런 쉼표가 내 일상에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힘이 조금 생겼다.
한국에서 사온 봄내음 가득한 달래를 처음으로 다듬어 보았다.
어린 시절, 큰 어머니께서 한 다라이 만들어 준 도토리묵을
먹을 줄만 알았다. 이번엔 처음으로 가루를 풀어 묵을 쒔다.
나를 위해, 그리고 봄 맛이 그리웠을 친구들을 위해 함께 요리를 해서 점심을 먹었다.
도하 시내도 벗어나보기러 했다.
Wakra 라는 바닷가에 가서 3월의 도하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바람에 담요를 덮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일어나서 다시 글을 쓸 힘이 생겼다.
앞으로 또 이런 느낌이 든다면 나는 나를 좀 내버려 둘 예정이다.
그래도 따뜻한 밥은 정성껏 차려서 나에게 줄 것이고
내가 쓸모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매일 저녁 남아있는 설거지는 다 끝내고 잠을 청할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노잼시기라는 단어와 한 발짝 멀어진 나를 발견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