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용돈 300원, 동생용돈 200원
해외에서 일하면서 혼자 밥 해 먹고 산지도 10년이 넘어간다.
가족, 주변의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 마무리 인사는 건강하고,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인사로 마무리가 된다.
정말 나 밥 잘 챙겨 먹는데, 혼자서 장 보러도 잘 다니고. 남의 나라 가서 필요한 것도 적당한 가격에 잘 사 오는 그런 재주도 생겼다.
회사가 준 숙소에서 세르비아 동료와 함께 산다. 그 친구는 닭가슴살 구워 먹고, 파스타 만들어 먹고, 뮤즐리를 먹는다. 나는 김밥도 싸고, 수프도 만들고 밥도 해야 하고 계란말이도 말아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주방에서 보낸다. 설거지를 다 하고 나면 주변에 튄 물을 닦고, 바닥에 떨어진 물기도 닦는다. 함께 사는 플랫메이트가 묻는다.
"어차피 마를 건데, 물기는 왜 닦아? 바닥에는 러그 깔려 있는데 왜 닦아?"
그건 우리 엄마의 설거지 조기 교육 덕분이다.
엄마는 의상실을 하면서 살림도 사셨기에 바쁘셨다. 그래서 나와 여동생은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옥상에서 엄마가 걷어온 빨래를 갰다.
엄마가 시키는 일을 빨리 끝낸 날에는 평소보다 용돈을 받는 시간이 당겨졌다.
내가 받는 용돈은 300원, 동생이 받는 용돈은 200원이다. 먼저 태어난 언니로서 누리는 100원의 가치는 컸다. 언니의 프리미엄이었던 셈이다. 난 이 300원이 영원한 300원일 줄 알았다.
하루는 내가 200원, 동생이 300원을 받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엄마 내가 언닌데! 왜 내가 300원 안 받고 200원 받아요? "
엄마가 말씀하셨다.
"요 며칠 설거지 하는 거 봤는데, 땡삐(여동생 별명)는 설거지하고 세제, 물기 뒷정리까지 다 하는데, 네가 설거지하고 나면 엄마가 다시 해야 하잖아. 그래서 잘했다고 땡삐한테 300원 주는 거야."
억울했다.... 언니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사실 그때를 돌아보면, 동생은 눈치도 빨랐고 예쁨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많이 했었다.
나는 그냥 먼저 태어났단 이유로, 언니니까 모든 것을 더 많이 받았다.
이것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설거지는 똑바로 해야 하는구나.
한국에 휴가를 갔을 때, 엄마에게 여쭈어보았다.
용돈 덜 받은 날의 이유가 설거지인 걸 알고 계시냐고.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셨다.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난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그날의 조기교육 덕분에 나는 아직도 주방에 들어가면 마무리를 깨끗하게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고.
용돈을 깎는 사람도 없고, 내 돈 내가 벌어 쓰니까 설거지 좀 미뤄도 상관없다.
여기저기 튄 물을 닦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설거지를 다 해놓고, 행주를 빨아서 널어두고
밥통 위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거즈를 덮어 놓고 나면 기분이 좋다.
다음날 마주하지 않아야 하는 설거지는 더욱 기분이 좋다.
어제의 마무리, 마침표를 단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기분을 엄마는 나에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