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비행에서 다친 후로 몸이 나 좀 돌봐라고 최후의 경고장을 던졌다. 뻐근했던 등과 허리는 괜찮아졌지만 두 발을 딛고 서기 힘들 만큼 발이 저렸고, 병원에서는 결절종이 생겼음을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이건 대부분 자연적으로 낫는다는데.. 내 느낌에 이건 자연치유가 될 것 같지 않아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자마자 병원에 가서 x ray, MRI 검사를 해서 보니 결절종은 발목을 찢어서 꺼내야 할 만큼 크기가 크고 여러 개가 생겨있었다. 거기에 더해 구두를 신고 10년을 넘게 뽈뽈거리며 기내서비스를 하고 무거운 컨테이너, 가방을 들어 올리던 나의 무게에 무너져 버린 인대 소식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물으셨다.
"평소에 발목 삐끗하는 느낌 많이 받지 않았어요?"
아차 싶었다. 나는 정말 자주 이런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서 또 구두 신고 출근하고, 그러다가 또 삐끗하고. 그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 상태를 가만히 방치해 두면 나 같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대를 잡아 주지 못해 다 틀려버린 발목뼈 사진을 보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발목인대봉합술과 결절종 제거수술을 함께 받았다.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발목에 상처가 생긴다는 말에
'아, 그루밍에서 이제 나한테 치마 입지 말라고 하겠구나.'
유니폼 치마를 입지 못한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수술 후 나는 휠체어에 기대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취가 깨고 나서는 화장실을 가는데 움직임이 힘들어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침대로 옮겨가다가 발이 침대 모서리에 부딪치는 바람에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다. 누군가가 내 발목을 쥐어짜면서 잘근잘근 밟는 그런 느낌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니 이 눈물을 계기로 앞으로는 건강을 잘 살펴라.!
내 발이 되어준 휠체어
조금씩 휠체어로 거동하는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냈던 병동은 간호 간병 통합병동이었다. 동생들도 출근을 해야 했고, 내 옆을 지켜주던 남자친구도 휴가가 끝이 나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은 입원 기간 동안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간단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 병동을 선택했다.
비행기에서 누르는 콜벨이 여기에도 있었다. 병실 티비에 연결된 버튼 하나, 화장실에 하나 그리고 복도의 전화기까지 총 3대.
기내에서 콜벨이 울리면 승객으로 비행기를 타더라도 나는 그 소리에 반응을 한다.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어떤 좌석에서 부르는지 확인하고 후다닥 달려간다. 그리고는 달려가서
"How may I assist you?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고 묻는다.
콜벨을 누르는 승객들은 도움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정말 필요 이상으로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맛보게 하는 분들도 있었다. 내가 한 번 갔을 때 모든 것을 시키지 않고, 가면 또 다른 것을 시키고, 또 시키고, 한 번에 이야기하면 내가 기억하고 다 해줄 건데.... 그래서 나도 간호사선생님을 부르는 콜벨을 누르기 전에는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번거롭지 않게 한꺼번에 부탁하게끔.
내가 조금씩 움직이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면서 콜벨을 누르는 횟수도 적어졌다.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식판을 늦게 치워달라고 부탁해야 할 때, 링거를 다 맞아서 바늘에서 분리해야 할 때, 아이스팩을 교체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 때.
나중에는 내 침대에서 콜벨이 울리면
"아이스팩 바꿔드릴까요?"
하고 새 아이스팩을 챙겨 와 주시는 센스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
밥시간이면
"식사 다 하셨어요?"
하고 문을 열고 들어와 주셨다.
그리고 내가 콜벨을 누르지 않고 2-3시간이 흐르면 조용히 노크하고 병실을 들여다보고 내가 괜찮은지 확인해 주고 가셨다.
나도 엄청 긴 비행을 할 때 손님이 마시거나 먹지 않으면 괜히 캐빈 한 바퀴 돌면서 그 손님 괜찮은지, 뭐 필요한 거 없는지 말 붙이려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생각이 나서 괜히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건강한 컨디션으로 일터에 돌아가게 되면 내가 받았던 고마운 마음 또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옆에 있어주는 가족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다시 한번 감사했다. 커피랑은 생전 일면식이 없는 남자친구는 병실에 올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에 샷을 추가해서 와 주었다.
김장을 마친 엄마는 수육에 시금치, 고소한 참기름을 바른 꼬들꼬들한 식감의 곱창김, 통영산 싱싱한 굴이 가득한 미역국까지 한 상을 가져다주셨다. 외삼촌이 직접 농사지으신 배추와 시금치라니 그 정성에 맛이 더욱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카타르에 있을 때면 김치가 냉장고에서 줄어드는 게 아쉬워 어쩔 줄 몰랐는데, 입원 기간 동안 이 집 저 집 맛나다는 김치를 몇 통이나 냉장고에 두고 먹는데. 이게 뭐라고 꽉 찬 김치통이 감동을 주냐
올해 첫 토피넛라떼도 마셨다. 길 건너편에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메뉴판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나에게는 너무나도 먼 나라 이야기였다. '당기시오'라고 적힌 문은 나는 건널 수 없는 벽, 비가 오면 우산을 들 손이 없어 나갈 수 없는 날, 대수롭지 않은 모든 것들이 나에게 너무나 큰 장애물이 되어 다가왔다. 두 손 가득 따뜻한 음료를 들고 신호등을 건너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의 모습이 영웅처럼 보였다.
직업 때문에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내 건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어떻게 생활 방식을 바꾸어 가야 할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간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관심을 갖고 마음을 나눠주는 풍족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하시는 모든 분들, 건강 챙기면서 항상 안전하게 비행하세요!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