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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지금Minow Dec 18. 2023

병원에서 느낀 따신 모먼트



@예쁜 하늘 사진 from 행님



병원에서의 2주가 지나고 집으로 왔다. 지난주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듯한 감기가 예상치 않게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하루는 괜찮았다 하루는 침대랑 일체가 되었다 한다.


집에 오고 나서 나의 생활은 더 단조로워졌다. 움직임은 반대로 더 부산스러워졌다. 방 안을 돌아다닐 때에는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목발도 쓰고, 화장실 문 앞에는 간의 의자도 하나 두었다. 화장실 바닥에 물이 없을 때는 모르겠으나 물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미끄덩해서 엄청 놀랐다.


아침은 여동생이 차려주고 치우고 출근을 한다. 저녁은 바퀴 달린 의자에 교정기를 찬 다리를 얹고 재주부리듯 한 접시 차려, 그 의자에 그릇을 올리고 목발로 밀어서 방에까지 들고 와서 먹는다. 퇴근 시간이 되면 남동생은 먹고 싶은 게 없냐고 전화도 해준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 한 달 넘게 안 읽는 현실 남매인데.. 요즘 그 관심과 사랑을 즐기고 있다.


나 또한 기괴한 모습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최소한의 도움으로 생활을 꾸리고자 노력 중이다. 동생들은 내 모습을 보고 웃는다. 그래 ㅋㅋ 웃자 이럴 때 함께 웃는 게 일류다.




이곳 나름의 유쾌함과 따뜻함이 있듯 내 병원 생활에도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1. 머리 감는 날


내가 지낸 간호 통합 병동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만큼 보호자들이 와 줄 수 없는 시간에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월, 수, 금은 머리를 감겨 주신다.


행님이 함께 있어 주는 며칠 동안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머리카락 없는 사람이 감겨주는 것이라도 내 두피에 물이 닿는 사실만으로 시원했다. 완벽하게 씻겨내려가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기갈 나는 리액션과 폭풍 칭찬이 없으면 두 번의 기회는 오지 않는 걸 알기에.


그러다가 행님이 가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손길로 머리를 감겨주신다고 해서 냅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오 마이 갓. 나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능숙하게 휠체어 각도를 조절하시고, 내 목과 다리에 어떻게 하면 무리가 덜 갈지 설명해 주셨다. 수건을 먼저 그 위에 비닐 가운 그 위에 물이 튀는 것이 방지되는 것까지 3중으로 목에 두르고 선생님은 머리를 감겨 주셨다. 머리도 많이 길었고, 24시간이 지나면 기름이 흐르기 시작하는 내 머리를 들이밀면서 민망함 동시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시간을 더 기억에 남게 만들어 준 것은 요양보호사님의 말씀이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샤워도 못하고 하는데, 머리라도 시원하게 감겨 드리면 환자분들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따뜻한 마음이 손끝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퇴원하기 전날까지 요양 보호사님 덕분에 꼬질함을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2. 항생제 주사는 아파유


입원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주사를 놓는 혈관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찌르면 터져 다른 곳을 찾고, 겨우 찾아 찔러 넣은 주삿바늘을 몸에 꽂고 있는 건 너무 힘이 들었다.


아침, 저녁마다 진통제와 항생제를 주사로 해서 맞아야 했다. 묵직하게 들어오다 이내 퉁퉁 부어버리는 내 피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간호사 선생님한테 주사 놓는 속도를 조금 천천히 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척이나 아파하는 것을 알고 간호사 선생님은 주사를 놓으면서 바늘이 지나간 바로 윗부분의 피부를 문질 문질 해 주셨다. 어릴 때 엄마 손은 약손 하면서 배를 문질러주면 통증이 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문지르며 주사를 놓아주시니 아픔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아픔에 공감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고통보다는 고마움에 통증이 덜 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간호사 선생님의 제스처를 본 뒤, 그 선생님이 오지 않으셔도 나는 주사를 맞을 때 혼자 문질렀다. '괜찮아~ 이거 맞고 나면 내일은 덜 아플 거니까 조금만 견디자.'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3. K 차녀 막남이의 특별 케어.


나는 셋 중 장녀다. K 장녀라고 하기에는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예전에는 최전방에서 엄마랑 유대를 쌓고 지냈다. 이제는 내 공백을 동생들이 잘 채워주고 있다.


내가 한국에 휴가를 오면 동생들은 출근하니까 집안 정리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주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동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그냥,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주어질 때 이왕이면 신경 써서 챙겨주고 싶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혼자서 머리를 감으려고 해도 손에 박혀있는 바늘 때문에 힘들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도 먼 나라 이야기이다.


주중에는 출근을 해도 주말에는 꼭 한 번씩 나를 보러 병원에 와줬다. 오기 전에 필요한 것은 없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미리 전화도 걸어준다. 그리고 병원에 와서는 머리도 감겨 주고, 자기 전에 나 혼자서 하는 일들을 모두 해 준다.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면 30분씩이나 걸릴 일들이 동생들은 5분 안에 뚝딱뚝딱해 낸다.

너무 많이 시키면 다음 주에 안 올까 봐서 나 혼자서 동생들이 오기 전에 이것저것 한다고 해도 미처 끝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자기야 이것 좀 해줘, 자기야 저것도 좀 해 줄 수 있어? 이렇게 따라다니면서 부탁을 해도 군말 없이 잘 들어주었다.


내가 늘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고 봐왔던 동생들이 이렇게나 훌쩍 자랐다니.  동생들이 떠나고 나서 병실에 홀로 앉아서 그 따뜻함에 일주일을 또 잘 쉬면서 보낼 수 있겠다 다짐을 했었다.



이제 병가의 반을 넘어섰다. 겨울이 어디 갔냐며 포근함에 가벼웠던 옷차림도 매서운 바람에 제법 두툼해졌다. 반대로 두툼하게 부어있던 내 발의 붓기 들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더불어 힘도 조금씩 더 들어가는 것을 보니 모두의 관심과 보살핌에 힘입어 잘 회복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다가오는 1월에는 목발도 졸업하고 나 혼자 씩씩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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