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번에 재입사를 하면서 내가 배정받은 숙소는 아담했다. 식탁은 2인용, 장롱에 문은 3개가 달려있다. 방안에 비행 때 쓰는 가방 두 개를 펼쳐 놓으면 문 입구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데 폴짝폴짝 개구리처럼 뛰어서 가야 하니. 그래서 원래는 방 안에 넣어 두고 싶었던 책상과 의자도 거실에 놓아두고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더 넓은 숙소로 이동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사 비용에 용달차를 불러서 이사를 하는 일이 보통이 아닌 터라 조금 좁지만 아늑한 이곳에서
‘물건 늘리지 않고 미니멀하게 잘 살아보자.’라고 생각했다.
브런치에 그리고 이 북에서 자주 보이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이 작은 공간에 살림살이 늘리지 않고 이 정도로 사는 거면 미니멀리스트다고 생각했다. 나의 착각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물건을 사지 않을 뿐, 쌓인 물건을 정리하지 않아 조그마한 방에서 쏟아져 나온 살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사막은 곧 여름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제는 사치스러워진 전기장판을 걷어내고, 무게감 있는 이불에서 조금은 가벼운 이불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대대적으로 옷장정리도 했다. 긴팔은 한 칸 아래쪽으로, 소매가 짧은 옷들은 내 손이 닿기 쉬운 곳으로 올려두었다. 평소 바지보다는 치마를 즐겨 입는다고 생각을 했지만, 청바지도 4개나 있고, 반바지도 제법 많았다. 옷을 살 때 화려한 패턴보다는 심플하고 단색을 사서 색이 바랠 때까지 입는 편이다. 8년 전 사진 속에 즐겨 입던 반바지들도 색이 바랜 채 반년은 옷장에서 숨을 쉬지도 못한 채 있었다. 이런 옷들도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절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엄마가 만들어 준 옷이다. 이제 곧 바느질 은퇴를 하시는 엄마한테서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참 많은 예쁜 옷을 얻어 입었다. 대학 입학식 때는 보라색 코트를, 처음 카타르 항공에 입사했을 때에는 베이지색 케이프 코트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트렌치코트를, 그리고 은퇴 마지막이라 서둘러 얻어 입은 카멜코트까지.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옷들은 평균 10년씩 나와 함께 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세탁을 맡기면 옷감이 많이 상하는 터라, 수고스럽더라도 계절이 바뀔 때 한국에 들고 가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들고 오면 다가오는 계절도 끄떡없다. 이 옷들은 평생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예외 없으니 너네들은 나의 옷장에서 이탈하려고 생각하지 말도록.
옷장이 말한다.
그래 진작에 안 입는 친구들 해방 좀 시켜주지.
입지도 않는 친구들은 이렇게 모셔놓기만 했니.
숙소 근처에는 헌 옷 수거함이 있다. 정말 이건 못 입겠다 싶은 것들은 버리고 세탁을 잘못해서 작아진 옷들, 내가 입지 않아서 옷장에 남겨진 옷들은 헌 옷 수거함에 갖다 넣었다. 홀가분했다. 그리고는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함께 같은 건물에 사는 동생들은 맥시멀리스트다. 보이는 곳에도 보이지 않은 곳에도 많은 물건들은 쟁여놓고 사는 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상대적으로 내가 미니멀리스트라고 착각을 하고 살았나 보다. 딱 나 하나만 덩그러니 보고 물건들을 정렬해 두니 나 역시도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던 걸.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삶을 살기보다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삶이 한동안은 지속될 것 같다. 지금 내가 가지고 사는 물건들보다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신 앞으로 내가 필요에 의해서 사는 물건들을 어떤 기준으로 살 것인지 생각을 잘해봐야겠다. 내가 그냥 이 물건을 봤으니까 사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필요에 의해서 사야 하는 것인지. 사야겠다고 미리 사전에 생각을 해 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충동적으로 사는 것인지. 한번 쓰고 예쁜 쓰레기가 될 물건들을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수고스럽게 사 오는 것은 아닌지.
계절이 바뀌는 시즌에 옷장 정리를 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맥시멀 리스트도 아니니까 그 중간인 뭐 미디엄리스트? 이 정도로 해두면 좋겠다. 하나를 사도 제대로 사서 마르고 닳을 때까지 잘 쓰자는 철학은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