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4월
사막은 4월에 계절이 어떨까?
더워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본격적으로. 계절이 바뀔 것을 암시하는 것은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카타르에 왔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잦은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이것도 글로벌 지구 온난화, 이제는 warming 이 아니라 global burning 이라고 하더라. . 이글거리는 이 날씨가 얼마나 더 무자비해지려나...
이곳에 와서 내가 알아차린 것이 하나 있다. 매우 더운 계절, 덜 더운계절. 경계가 모호한 나라에서는 더욱더 사계절이 그리워진다
개화시기를 알려주는 하루 끝자락의 기상 캐스터의 지도도, 단풍 시기를 알려주는 것도. 놓치지 않고 매해 부동의 프로파일 사진을 차지하는 어머니
카톡의 봄꽃 사진도...
아무튼 이 모든 사소한 것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놓치고 싶지 않지만 놓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계절은 내가 살면서 가장 기다려왔고,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지만 그만큼 커다란 성취감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이 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곳에서 나는 계절의 바뀜, 그 계절이 주는 향연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
봄에는 개나리가 가득 반겨주는 도로를 달리고, 초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진 곳에서 모기에게 잔뜩 뜯긴 다리로 물파스를 바르고,
시원하게 여름 장마가 쏟아지는 날에는 수박을 왕창 먹어야지. 귀뚜라미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날에는 노이스 캔슬링 헤드셋을 벗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가을의 문턱에 접어드는 바람을 만끽할 것이다. 가을에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저벅저벅 밟으며 엄마가 만들어준 트렌치코트를 입고
가을여자인 척도 하고, 겨울엔 동면을 하는 동물들처럼 방구석에서 피하지방을 늘려나가겠지.
적고 보니 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태어난 덕분에 계절을 멋들어지게 즐기는 방법들을 많이 익혀온 것 같다.
이것도 복이지.
하지만 현실은 무자비하게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타오르는 중동의 4월 하늘.
일터로 돌아오고 나서 휘몰아치는 여러 일들에 정신이 없었다. 일상을 되찾고 내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에 대한 생긱이 정리가 되니 이런 계절도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이 시간들 또한 지나가리.
그렇다고 이 아쉬운 마음을 마음속에 남겨두기엔 내가 요즘 너무 열심히 일상을 잘 살아내고 있는걸?
최근에 한국 비행을 다녀와서 벚꽃이 만개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친구에게, 나는 그걸 보지 못해서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꽃값이 조금 사악한 사막이지만 그래도 나의 기분전환을 위해서 꽃을 사러 가야겠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나는 나의 기분을 좋게 해 줘야 할 의무가 있기에. 내가 한국에서 부탁한 물건을 들고 와 준 친구는 꽃다발도 하나 주고 갔다.
올해는 꽃놀이 대신 친구가 건네준 꽃다발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봐야겠다. 화병에 꽂아놓으니 방에 들어올 때마다 누군가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사람이 자연을 가까이 둬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쳐가는 기분이 들면 꽃들로 기분전환을 하는 방법도 꽤나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사막에서 오늘 또 한 번 나에 대해서 알았고, 기분 전환의 기술도 터득했다.
다가오는 여름은 휴가를 가게 되면 둥지냉면 잔뜩 쟁여와서 오이 얇게 썰어 올려먹으며 보내야지. 여름이 긴 곳에서 몇 봉지의 냉면을 해치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지나가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시길. 저는 이만 여름의 햇살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