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격려,응원,조언이 쏟아져요.

Second officer, one stripe.

by 나의지금Minow


부서 이동을 한 지 일년이 지났다. 회사에서 정해준 기종을 몰기 위해서 필요한 타입레이팅 교육도 헬싱키에서 마쳤다. 잘했다 싶은 것은 그 와중에도 중간중간 일기장에 그리고 저장글로 그때의 감정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야지 하면서도 바쁘게 몰아치는 교육 일정에 글쓰기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넘어간것을 인정한다. 덩그러니 내 손에 쥐어진 회사 아이패드 속에는 몇 백개의 서류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막막했고 어떻게 헤쳐나가야할까.. 잔뜩 겁먹고 있던 1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은 서툴지만 search function 에 의존하지 않고 내 생각의 카테고리 분류에 따라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배워야할 것들이 산더미 같지만. 많이 컸다.



회사마다 부르는 체계가 다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어깨의 에필렙이 1줄 부터 시작한다. 지금 내가 달고 있는 1줄은 Second officer, cadet, MPL 교육 훈련생 신분이다. 우리가 끝내야하는 교육의 스테이지가 나누어져 있고, 인스트럭터 캡틴들과 함께 비행을 한다. 매 섹터마다 회사가 선택한 평가 시스템에 따라 9개의 항목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 매일 평가받는 삶은 부담스럽고 긴장의 연속이지만 그만큼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갖추어나가야할 소양과 지식이 많은 일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가오는 비행에 필요한 절차, 지나가는 나라들의 정보, 공항 정보, 관련된 것들을 공부해두는 것. 내가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해서 가도 비행에 가면 늘 배울 것이 생긴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마음 자세, 푹 쉬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출근 하는 것.



요즘 회사에 출근할 때 마다 참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 승무원으로 일을 할 때에는 브리핑룸에서 소개를 할 때, 10년 가까이 일을 했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고 내가 할 일을 지켜봐준다. 평가를 하는 비행때에 조금 더 신경써서 하지 내 손에 모든 일들이 다 익어있었기 때문에 긴장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많이 없었고, 이 정도 일했으면 당연히 해야지? 이런느낌.

1줄이 새겨진 에필렙을 어깨에 달고 출근을 하면 주차장에서부터 캡틴들이 인사를 건넨다. 예의상 지나갈 때 Good morning이라 건네면

‘Oh you are on A320? All the best. Now it is the best season for training. This morning visibility wans’t so good here, by the time you get there, you should be fine.”


새벽에 안개가 낀 날에는 추가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절차들이 생겨서 혼자 멀리서 중얼거리면서 온 내 모습을 읽으신건가. 조금 더 밝아지면 괜찮아 질 거라고 공항 정보를 건네며 퇴근을 하신다.


브리핑룸 테이블과 정렬된 의자는 2개. 내 비행에는 기장님, safety pilot 부기장,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조종실 구성원이다. 내가 보통은 제일 먼저 가서 비행편명과 도착지가 적힌 팻말을 챙겨 함께 일할 기장, 부기장님을 기다린다. 의자가 하나 모자라면 옆 테이블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내가 앉은 테이블로 들고 온다. 그러면 다른 비행을 준비하던 기장 부기장님들이


“You are trainee.! Where are you going? which stage are you? All the best. See you soon in line”


관심을 갖고 이런 말씀들을 건네주신다. 넙죽 감사합니다, 곧 같이 비행해요~ 같은 기종이 아닐수도 있는데, 건네주신 말이 감사해서 화답을 한다.

SO,Second officer


처음 승무원으로 회사에 입사했을 때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이다. 얼른 내 일하는 패턴을 만들기 위해서 여기저기 질문을 하고 다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비행을 준비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메뉴얼도 뒤져보고, 유튜브도 찾고, 직장동료이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참! 요즘은 챗 지피티 한테도 물어보는데… 뭐야?나보다 전략적이잖아? 질 수 없다.. 챗 지피티는 내가 모르던 항공 유튜버들, 유용한 비디오들도 소개 해준다. 그래도 넌 비행기 이착륙 못하잖아.. 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혼자서 고군분투해도 답을 찾지 못할 때에는 노트 한 켠에 한국어로 질문을 적어두었다가 비행에 가면 인스트럭터 캡틴에게 물어본다. 가끔은 내가 원하던 답을 바로 얻기도 하고, 아닌 날도 있고, 삼천포로 빠져서 예상치 못한 것을 배워올 때도 있다. 사실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아 이해가 될 때 까지 캐물어서 인스트럭터 캡틴이 피곤해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도.. 캡틴.. 저는 지금 열심히 배워야하는 단계이니까 이해해주세요. 디브리핑이 끝난 뒤, 캡틴이 피드백을 물어보면 꼭 언급해드린다.

“ 내가 이해할 때 까지 끝까지 설명해주셔셔 고맙습니다!”


그러면 캡틴은 싱긋 웃으며

“당연히 내가 해야할 일인걸. 오늘 비행으로 네가 배운 것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금 하는 것 처럼 계속 준비해서 비행하면 곧 라인에서 볼 수 있겠다. Keep up the good work”

라고 격려해주신다.




요즘 비행이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적게는 5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씩 공부를 한다. 20분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도서관에 가거나, 대부분의 날은 거실에 있는 책상과 식탁을 오가며 다가올 비행을 준비한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노력으로라도 해야지. 생각의 회로를 돌리고 읽고 또 읽다보면 처음보다는 쉽게 느껴지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PM (pilot monitoring) duty를 하는 스테이지에서 대부분의 부기장, 인스트럭터 기장님이 연락처를 건네 주셨다. 혹시 비행 준비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답을 해 줄테니 연락을 하라고. 비행 스케줄이 연달아 있지 않으면, 비행이 끝나고 연락처를 건네주신 분들께 바로 연락을 드리는 편이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내가 물어오는 질문이.. 나에게는 크고 어려운 것일지는 몰라도 그 분들께에는 너무 쉬운 질문일수 있으니. 마음 내어서 답해주신다는게 정말 감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배치메이트들과 함께 그라운드 코스를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나만 유난히 연락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진짜 도움을 주고 싶어서, 두 번째, 내가 부족해보여서? 두 번째 생각이 든 이유는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의 영향이 미친 것 같다. “Blink” 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사람의 성별, 인종에 대해서 사람을 처음 본 몇 초 안에 무의식속에서 결정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 무의식속에서 내가 당당하고,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한 주체로서 보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는 요즘이다.


책을 떠나 내가 승무원이던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어떤 주니어 크루들에게 내가 도움을 주고자 손을 내밀었었나. 모르는데도 몰라도 괜찮다는 태도를 가진 크루들보다는 모르면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조언을 건넸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데 선뜻 조언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나도 같이 비행하는 분들이 괜찮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미리 여쭈어본다. 내가 오퍼레이팅하는 부분에서 실수를 하거나 더 효과적으로 오퍼레이팅 할 수 있는 테크닉이 있으면 조언을 해달라고. 나의 행동을 지켜보셔야하고 정보도 찾아야하기에 귀찮은 일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좋은 마음으로 피드백을 주시고 팁을 주시면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어리신 부기장님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업계에서는 나보다 더 많은 경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들의 시간과 경력을 존중한다.


매일 쏟아져오는 피드백과 평가에 긴장의 연속이지만, 또 동시에 쏟아져오는 격려와 응원 아낌없는 조언에 감사한 날들이다.


몇 달 뒤 정식 부기장이 되면 이 시간들도 잊혀져가고, 또 그리운 부분들이 생기겠지.

단단한 기초 공사 위에 튼튼한 건물들이 자리잡을 수 있듯이 나의 기초를 잘 다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폭풍처럼 몰아쳐서 부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