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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비행하러 온 캡틴

by 나의지금Minow


7월의 마지막날이었다.

게슴츠레 막힌 코와 귀 때문에 하루를 그라운드에서 보냈다. 코와 귀가 뻥 뚫리자 기가 막히게 스탠바이는 아부다비 비행으로 바뀌었다.


오후 7시 출발에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오는 스케줄. 나쁘지 않았다.



유니폼에서 느껴지는 연륜과 포스.

브리핑 룸에서 만나 서류들을 검토하다보면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캡틴이 된 분들이 있다. 내 아부다비 비행의 기장님은 90년 후반생이셨다.

얼핏 보았을 때 31일 뭐시기..설마 생일이 오늘인가? 긴가민가했다.



브리핑을 끝내고 시간이 잠시 남았다. 캡틴은 잠시 듀티프리에 들렀다 오고 나는 새로 업데이트 된 플라잇 플랜을 프린트했다.



이미그레이션을 지나 세큐리티를 지나, 버스를 타고 비행기가 있는 게이트로 갔다. 와...습도가 습도가 정말 숨이 막혔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안경은 뿌옇게 변했고, 50발자국도 지나지 않아 등줄기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날씨에 외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드실까.. 너무 더울 때에는 휴식할 시간도 충분히 가지셔야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도 기체 외부점검도 하고 한낮의 출발시간이면, 칵핏의 온도는 40도에 육박한다. 기내 온도는 29도 아래로 유지되고 그 이상이면 승객탑승을 지연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앉아서 하는거다. 토글 스위치도 뜨겁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휴지로 슥슥 닦아낸다. 넥타이 풀고 셔츠 단추 불고 시원한 얼음물에 담갔다가 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든다.





비행기에 도착해 짐을 풀고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승무원과 크루가 만나 하는 조인트 브리핑을 하는데 캡틴이

' 내 이름은 @@이고, 오늘은 내 33번째 생일이야.'


꺄ㅑㅑ 33세 생일이라니.

생일 축하해요 캡틴!


그리고는 듀티프리 백에서 초콜렛 상자를 건네주었다. 짧은 비행이지만 이거 먹고 힘내서 빨리 돌아오자는 메시지도 함께.



45분의 짧은 비행,

CIP 와 VIP가 오고가는 섹터였다. 헤드셋을 벗을 시간도 없이 우리는 착륙준비를 했다.

50

40

30

Retard retard


아부다비에 무사히 랜딩을 했다. 저녁시간이면 운영되는 Follow the green 지시를 받고 게이트에 도착했다. Follow the green은 활주로에서 벗어나 비행기가 택시를 시작하면, 택시 방향을 교신으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초록불을 따라가면 게이트에 도착하는 시스템이다. 만약 우리가 중간에 멈춰야 하면


" Follow the green, gate 612 hold short of M" 이런 식으로 교신이 온다.


우리 홈 베이스 공항에도 follow the green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까.




출발 준비를 마치고 VIP 손님이 탑승하기까지 시간이 20분정도 남았다. 아..평소에 들고 다니던 홍삼이랑 파우치도 안들고왔네 오늘은. 기장님들이 피곤해 하시면 같이 에브리데이 홍삼 한 스틱씩 쭉쭉 짜 먹고 기력 회복을 한다. 몸에 좋은 건 쓰지~ ㅋㅋ 으쌰으쌰 힘이 난다고 좋아하시는데. 그 기쁨의 순간도 선사하지 못하고. 음...


포스트 잇에 얼른 케잌 하나를 그리고 초 2개를 꽂았다. 그리고 한국어로 "생일 축하해 캡틴 ㅇㅇ"

이런게 적어서 건네주었다.


진지했던 캡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 고마워. 내 고등학교때 반 친구가 한국인이라서 내 이름은 한국어로 어떻게 생긴줄 알아. 이거 내 이름이잖아!" 하고 내가 적어준 자기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시간이 많았으면 뭐라도 준비해주는건데.

캡틴은 그 포스트 잇을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줄거라고 자랑을 했다. PFD 옆 공간에 붙여두고 오늘을 기억해야겠다며 기뻐해주니..나도 기뻤다.


빨리 은퇴하는 것, 그리고 내년 생일에는 비행을 하지 않겠다던 30대 초반의 캡틴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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