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잠,유연한 마음
파이널 라인체크를 5월 말에 끝내고 부기장으로 첫 로스터를 받았다.
그라운드 코스, 6개월 마다 치르는 정기훈련 LPC/OPC. 레이오버 3개에 턴 더블섹터. 총 비행시간 65시간, 듀티시간은 100시간이 훌쩍 넘었겠지?
단거리가 많은 내가 타는 기종은 대형기종보다 바쁘다. 주 5일 출근을 하는 주가 대부분이었으니.
훈련기간일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에 퇴근했던 스케줄은 거의 다 사라졌다. 저녁 8시에 출근해서 해뜨고 퇴근, 다음날은 아침에 출근. 밤낮을 부침개 뒤집듯 휘리릭 휙휙 뒤집는 일정이 많았다.
승무원 생활을 10년 넘게 하는 동안도 이런 생활을 했었지만,지난 1년 반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인지 다이나믹한 출근시간을 맞추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부기장 생활 한 달차.
내가 집중한 3 가지가 있다.
잠. 체력. 유연한 마음가짐.
1. 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잠자는 시간 확보에 힘썼다. 시간 별로 기록할 수 있는 일기장에 밤을 새는 비행이 있는 날은 출근 전 4-5시간. 그 전날 밤에는 8-10시간 가까이 잠을 잤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수면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한 노력은 통했고, 흐트러지지 않는 정신으로 비행을 마치는데 이정도가 필요하구나..
그리고 동시에 신경쓰는 것은 먹는 것. 조금이라도 배가 부르면 식곤증이 몰려오기 때문에 출근 전 식사는 필수. 밤을 새고 돌아오는 비행에는 간단한 음식을 챙겨다닌다.
대신..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배달 음식을 시키는 횟수가 2-3번이 늘어난 것 같다. 조금 익숙해지면 다시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확보해야지.
2. 체력
친절한 마음도 상대를 생각하는 태도도 내 컨디션과 체력이 뒷받침 될때야 가능한 일이다. 내 한몸 건사하기 힘든데 남을 생각할 수 있으랴.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진건 확실하다.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어깨가 구부정해지지는 않을 까, 앉아 있는 자세가 흐트러지지는 않을까. 이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선 몸에 근육을 장착하고 체력 증진이 필수!
다음달부터는 크루에서 퍼스널 트레이너로 이직한 친구에게 수업을 듣기로 했다. 부끄럽지만 지금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세탁소에 유니폼 맡기러 가는 길에 걷는 20분, 오래 앉아 있어 뭉친 고관절 근육을 폼롤러 위에서 풀어주는 것 밖에 없다.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
3. 유연한 마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통제가능 한 것은 나의 컨디션, 비행 준비 등등
통제 불가능한 것은 함께 비행하는 기장님의 그날 컨디션, 비행기 상태, 기상 등등
최근.. 유별난 언어습관을 가진 기장님과 비행을 했는데. 흠... 갇힌 공간에서 한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암흑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좋은 기장님들과 비행을 하면 귀감이 되어주시는 모습에 감사하고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반면. 반대의 모습을 가진 분들과 비행을 하면. 나는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면 안되겠다 다짐을 한다. 여러면에서 매 비행은 나에게 다른 가르침을 준다.
마음이 경직되면 이런 것들도 그러려니 흘려보내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대신 와이라노 도대체... 이런 생각이 들어 마음을 지치게 한다.
말캉한 밀가루 반죽처럼. 마음도 생각도 자세도 유연해야 힘을 빼야하는 순간에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스트레스가 밀려오면 창밖을 쳐다본다.
고요한 하늘을 보고 쉼호흡을 깊게 하고 나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시간이 쌓이면 한 달차의 고민들도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겠지?
우당탕탕은 아니고 우당탕? 요정도의 느낌으로 한 달 스케줄 소화를 해냈다.
한 낮의 출발에는 조종실 온도가 38도에 육박해 송골송골 맺힌 땀이 선크림을 씻어낸다. 휴지로 슥슥 닦아내며 생각한다. 흘린 땀은 ㅋㅋ 이렇게 흘린 땀이 어감상 아닐지언정... 배신하지 않는다.
하면 는다. 그냥 말고 의식적으로 잘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실력이 늘거다. 그래왔고 경험했고 또 그럴것이야. 최면으로 마무리해보는 한 달차 부기장 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