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글씨체를 가진 사람이 되려고

by 나의지금Minow

글씨체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던 시절이 있는가.

나에겐 두세 번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서예를 배우던 초등학교 시절 약간 진하고 뭉툭한 연필 촉으로 꾹꾹 눌러쓰던 판본체의 느낌으로 한글을 쓰는 것을 즐겼다. 원고지에 반듯하게, 사각 틀에 딱 맞는 무언가를 집어넣는 듯한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 시절도 잠시, 꽃들 지금의 궁서체와 비슷한 서체로 연습이 이어지면서 글씨도 조금씩 변화를 맞이했다. 제법 어른들의 글씨체와 비슷해진 것에 뿌듯함을 느꼈더랬지.


지난 1년 반 동안 지상에서의 훈련을 받으면서 많은 분들의 캡틴을 만났다. 그중에 정말 손 글씨체가 예쁘신 분들이 있었다. 화이트보드에 적으시며 브리핑을 준비하는 게 하나의 역할이겠지만, 나는 거기에도 분명 노력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칠판 판서, 비행 로그북, 그리고 비행기 테크니컬 로그북에 바르게 적힌 그분의 필체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올해 내가 노력해 볼 것은 글씨체를 교정해 보자!




2025년 필체 vs 2026년 필체


글씨를 후루룩 면치기 하듯 적은 후, 누군가가 글씨체가 왜 이렇냐 물으면? 천재는 악필이라는 굉장한 변명이 있다. 이 악필을 핑계 삼으려고 하면 전제 조건은 천재여야 하는데 나는 천재가 아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을 조금 더 들여 글씨체를 다듬는 것이다.


2026년 필체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쓰던 글씨와 비슷한 것 같다. 기억하는 이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반 친구들 모두에게 손수 편지를 적어주신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의 글씨가 마치 책에 있는 필체와 너무 같고 예뻐서 무작정 따라 했었기 때문이다.


연필을 들고 종이에 미끄러져 나가는 촉감을 새기며 글을 적는 시간보다, 온라인에서 키보드로 타다닥 혹은 음성 메시지로 기록하는 시간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나만의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천천히 예쁘게 잘 적어보자. 이것도 하나의 내 모습이 담겨 나오는 결과이니.






아니 웬걸, 답답했다. 좋은 글을 읽고 적고 싶은 문장을 밑줄을 긋는 것 까지는 수월했다. 진득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필사를 해 나간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긴 글을 손으로 적어 내려가지 않았다.




나 혼자 캠페인을 시작한 지 2주가 넘었다. 답답했던 마음을 누르기 위해서 배경음악으로 차분한 피아노 연주곡을 틀었다. 반듯하게 채우고 있는 공책들의 말랑함을 느끼며 바쁜 마음을 누른다. 국그릇에 격불한 말차를 다기에 담아 한 켠에 준비하면 제법 마음이 느슨해진다.



쌉쌀한 말차를 한 모금하고 내가 좋아하는 종이와 연필/볼펜의 궁합으로 한 자 한 자 써나가면 기분이 제법 좋다. 쇼츠의 도파민으로 가득했던 뇌를 리셋하는 기분이랄까, 좋은 글을 곱씹으며 음미하는 과정이 좋다. 그리고 블로그를 쓰게 끔 하는 트리거가 되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갑자기 든 생각..


서예를 다시 하고 싶다. 먹을 짱짱하게 갈아서 화선지에 번지지 않게 붓을 잡고 글을 써 내려가는 기분.


다음 휴가 때 벼루랑 먹을 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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