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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Mar 19. 2022

나누면 두 배가 되는

고등학교 16 | 억지로 이어온 익숙함이 소중했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친구들은 점점 더 편안해졌다. 뭐, 외고 특성상 대부분이 수시를 준비했던 덕도 있지만, 매일 공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으니 오히려 공부의 끝이 보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듯했다.


    여전히 나는 모자랐다. 사회탐구 두 과목 중 한 과목의 준비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짧았고, 그 시간에 다른 과목을 충실히 챙기는 것에 열중했다. 매일 그랬듯. 당연하게.


    수능이 다가오자 이제는 의자에 앉는 연습도 해야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몸이 불편한 수험생을 위한 별도의 시험장에서도 수능을 치를 수 있다고 했지만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지금껏 억지로 이어왔던 익숙함이 내게는 더욱 소중했다. 그렇게 일반 시험장에서 수능을 치르기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나름의 체력을 쌓았다.


 



    수능을 이 주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엄마는 조용히 내게 힘드냐고 물었다. 갑자기 다가온 질문이 나는 낯설었고, 놀랐다.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공부 이야기를 한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먹고 싶은 것이나 주말 동안의 일정을 공유하는 것 빼고는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수능을 치른 지 일 년이 겨우 지난 시점에서 엄마는 내게 이 시기가 가장 무서웠다고 말하곤 했다. 대학교 탈락보다 더 무서웠던 건 말이 없는 나였다. 


    이 말을 듣고 나서야 그 무의식적 대화 단절의 원인을 파악했다. 학교에서는 별 다른 일이 없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아픔을 가족까지 알리고 싶지 않았다. 기숙사 퇴소 시간이 다가오면 건물 출입구 앞에 항상 엄마가 서서 기다렸기에, 퇴소 시간 30분 전에는 일부러 출입구 근처 책상에서 원래 학습실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나누면 두 배가 되는 건 기쁨만이 아니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라는 걸, 그때부터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대화 단절의 원인을 부모님께 전하지 못했다. 그저 '허허, 되게 힘들었나 봐'라고 답했을 뿐.


    



    수능 전날. 기숙사에 있던 짐을 모조리 싼 후 학교를 빠져나왔다. 이제 집에서 학교로 매일 통학해야 한다는 아쉬움과, 퇴소 전에 한 번쯤 '학생답지 않은' 행동을 잔뜩 하고 싶었지만 결국 못한 아쉬움이 동시에 다가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선 차에 올라탄 내게 내 명의로 된 최신형 스마트폰을 내미셨다. 내 명의로 된 스마트폰. 처음이었다. 자린고비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사회탐구 요점정리를 한 번, 스마트폰 외형을 한 번 쳐다보는 걸로 수능 전날 저녁이 지나갔다.


      


 

   매년 수험생들이 말하는 '역대 불수능'이라는 칭호를 인정받은 수능이었다. 매 모의고사를 수능처럼 치러온 덕분에 과학 시험지 같았던 국어 문제에도 별 동요 없이 시험을 끝냈다. 평가원이 악독하다는 걸 이미 머릿속에 각인시킨 덕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중학교 친구들에 둘러싸여 안부를 묻기도 했다. 3년간 함께했던 교복을 입은 채로 요점정리 노트도 읽다가 시험을 하나둘씩 보내주었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즈음에는 이미 일본어 시험 마지막 문제를 마킹하고 있었다.


    건물을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 부모님이 보였다. 수능 전에 그 순간이 되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했는데, 나는 그저 배가 고팠고, 피곤했다. 


    단골 식당에서 식사 후 답을 확인했고, 면접을 봤던 대학의 최종 발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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