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오즈 Mar 19. 2022

12년이 걸린 순간

고등학교 17 | 단상 위에서 상 받는 너, 단상 아래에서 손뼉 치던 나

    수능 예상 점수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무난하다고 생각했던 국어의 1등급 점수가 예상보다 많이 낮았다. 생각보다 고난도의 시험을 치른 것이었다. 아, 물론 내가 너무 똑똑해서 시험이 괜찮았다는 게 아니다. 나에게는 모르는 문제를 우선 뒤로 넘겨버리는 습관이 있었기에 그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아서 난이도가 적정하다고 착각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수능 답안을 채점해보니 '4과목의 등급 합이 6 이내'라는, 한 대학의 수능 최저 기준을 깔끔하게 충족했다. 그 상황에 내가 더 놀란 건 점수가 아니라 내 점수를 보고 말을 잇지 못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어릴 때부터 두뇌가 명석했던 언니가 큰 영향력을 미쳤다. 언니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주요 과목의 내신 점수와 등수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공부보다 활동에 치중한 삶을 부모님께 보여드렸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성적은 낮을 거라 예상하셨다. 글에서 이미 느껴지겠지만, 1학년 말에 전학을 논의하고 나서 부모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내게 성적표를 요구하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내 성적을 3년 간 모르셨다. 항상 "어련히 잘하겠지"라고 말하시곤 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던, 어머니와의 학교 성적을 주제로 한 대화는 3학년 학부모 상담에서 담임 선생님께서 나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여준 것을 계기로 대략 십 분 정도 기숙사 앞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 유일했다. 물론 항상 그러했듯 결론은 "네가 어련히 잘할 거니까 너 원하는 대로 하렴"이었다. 상담 이후에 낮은 내신 성적을 확인하시고는 내게 혼을 내실 줄 알았는데 기숙사 건물을 빠져나오는 나에게 달려오신 어머니께서는 "너 모의고사 성적이 왜 이렇게 좋아?"라며 '우와', '우워', '대단한데'와 같은 말을 내게 건넸다. 그 반응을 십 분 정도 듣고 있다가 피식 웃으며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며 어머니를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어머니께서는 혼잣말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얼마나 최악을 생각하고 계셨길래'하면서도 그동안 나의 성적이 얼마나 궁금하셨을까 싶어 죄송스러워졌다.


    수능이 끝난 날, 아버지는 내게 12년의 학창 시절을 거의 마무리 짓는 이 시점에서야 "기특하다"라고 하셨다. 뭐, 다 끝난 마당에 이 정도의 너그러움은 생각보다 좋았다. 빈말이라고 해도 예상보다 좋게 마무리한 듯했으니까.

    


    

    다음 날. 나는 입원을 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무릎 검사를 받는 날이었고, 동시에 수능 전에 면접을 치렀던 대학의 최종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병원에서 결과가 나올 듯했고, 별 긴장감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14시 5분 전. 접수처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그 대학의 조기 발표 유무를 확인했고, 아직 해당 사이트가 업로드되지 않은 것을 보고선 안심하고 입원 수속을 하기 위해 집 주소와 번호를 적고 있었다.


    언젠지도 모를 순간에 14시 정각이 지났고, 어두웠던 휴대폰 화면이 갑자기 켜졌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메시지 알림에 담임 선생님의 축하의 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며 스마트폰 화면 위를 두드리면서 동시에 나의 주민번호 뒷자리를 아직도 모르는 아버지를 책망하느라 바빴고, 그렇게 첫 번째 대학 합격을 맞이했다. 

        



    입원 첫날, 같은 병동을 쓰던 분들과 가족, 친구 한두 명 정도의 축하를 받았다. 


    나흘이 지난 후 나는 퇴원했다. 


    한 달이 지났고, 더 이상의 합격 연락이 없었다. 


    수능 최저 기준을 달성했던 대학에서 1차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애초에 그 대학은 예전부터 꿈꾸던 곳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대학에 붙을 거라는 기대가 없었다. 그동안 한 번도 그 대학에 붙을 거라는 소망조차 없던 대학이었다. 그런데, 그 대학의 불합격은 단순히 해당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한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았다.




    그 대학에는 학교 추천 전형이 있었다. 학교 정기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가지는 학생들 중 일부는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별도의 전형으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다. 이미 여러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이끌어낸 것을 높은 내신으로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이는 해당 대학에서의 학업을 정진하기 위한 능력이 충분히 인정받은 것과 마찬가지라 수능 최저 기준 자체도 비교적 느슨했다.


    내신이 낮은 나는 그 학생들 명단에 해당되지 못했다. 그래서 수능 최저 기준이 비교적 높은 '일반 전형'에 도전해야 했다. 이 전형은 문과 계열의 대학 중 수능 최저 기준이 높은 편에 속했다.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을 하면 더 이상 정시로 대학에 지원할 수 없다.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1차 합격을 하지 못하면 그 수능 점수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 몸을 휘감았다. 

    



    내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존경하던 친구가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수학 과외를 받는 등 학업에 매우 열중하여 학교 시험에서 항상 좋은 점수를 받던 친구였다. 그 친구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에 진학했고, 여전히 좋은 성적을 받는 친구를 우러러보며 응원하곤 했다. 내 상황에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매번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는 친구와 그 무대 아래서 손뼉 치는 나와의 간격으로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영어 성적이 좋다는 것은 외고에서 특기자 전형 지원 준비 자격이 부여된다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그 친구는 이미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 학교장 추천 전형도. 부러웠다. 질투 수준도 아니었다. 이미 다른 차원의 친구였다. 


     수능이 끝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영화관으로 불러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그 친구와 함께 다녔던 영어학원이 근처에 있다는 게 생각났고, 그 길로 그 친구와 잠시 영어학원에 들렸다.


    다른 대학의 결과가 언제 나왔는지는 몰랐다. 나는 그 친구가 영어 원장 선생님과 대화하는 과정을 엿들으며 그 친구가 특기자 전형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합격한 대학도 훌륭했다. 그러나 항상 똑똑한 친구 옆에서는 그 자신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친구의 특기자 합격 소식에 헤벌레 웃고 있는 원장 선생님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친구의 대학 합격 소식에 신이 나서 나에게는 대학 결과를 묻지도 않는 선생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약간의 웃음을 지으며 학원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집으로 향하던 길.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도중 그 친구는 내게 수능 잘 쳤냐며 먼저 말을 건넸다. 특기자 전형을 준비하다 보니 분명 그 대학에 합격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른 학교도 합격하고 싶어서 수능 공부에 집중했다고 했다. 근데 수능이 많이 어려워서 예상 점수를 받지 못해 학교장 추천 전형의 수능 최저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고 했다. 1차 합격해서 최저 못 맞춘 게 더 아쉽다고 말하는 친구의 뒷모습을 졸졸 따라갔다. 


    그 학교장 추천 전형. 분명 내가 일반 전형으로 지원한 그 대학 전형이었다. 나는 그 전형의 수능 최저 기준을 물었다. 그 친구는 "음, 3합 5(수능 3개 과목의 등급 합이 5 이내)였나?"라며 총총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12년간 같은 시점, 같은 공간에서 시험을 보면서 단 한 번도 그 친구보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12년이 지난 수능에서 처음으로 그 친구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럼 뭐해.

이전 17화 나누면 두 배가 되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