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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Mar 19. 2022

노력해도 실패한다

고등학교 18 | 최선의 노력은 개인의 한계를 알려준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 친구보다 높은 성적을 받은 기분은 어떠했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어색했다.


    그리고 그 어색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억울함으로 팽창했다.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했던 대학에 불합격한 다음날. 해당 결과가 하교한 후 발표되었기에 담임선생님께서는 조례가 끝난 후 나를 불렀다. 아마 조기 발표된 결과를 다시 한번 알려주려고 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표정은 이미 무표정이었다. 어젯밤 감기에 걸려 검은색 마스크를 끼고선 창가 커튼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만 30분 정도 바라본 상태였다. 억울함이 극에 달하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꽤 도움이 된다. 


    선생님은 나를 복도로 부르시더니 불합격이 그렇게 슬프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리고선 지금 붙었던 대학도 성적이 낮은 내게는 운이 좋은 거라고 말씀하시고는 사라지셨다.


    "운이 좋았다", 라.




    맞다. 작년 졸업생들의 기록을 토대로 분석하자면, 내 성적은 합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종 발표 첫날, 최초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건 거의 운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런 건 내신 성적에만 해당했다. 지원한 전형이 내신 성적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신성적과 교내 활동까지 평가하는 전형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 말에 반박하려고 움찔거리자마자 나는 그 상대가 이미 여러 해 선생님으로 살아온 한 성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나보다 더 오랜 시간 경험했을 순간이었고, 나는 그저 처음이었다.


    분명 다른 사람들은 과연 성적이 낮은 내가 합격한 게 공평하다고 생각했을까.


    성적이 낮은 내가 다른 대학에 떨어졌다고 억울해도 되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공평하지 않았다.

    내가 틀렸다.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지. 대학교 입학처에 가서 나 합격 취소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나. 내가 직접?

    공평하지 않다는 건 분명했는데 바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죽어라 노력만 했는데 돌아오는 건 그만큼 쌓여버린 억울함뿐이었다.




    3학년 여름.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김중혁 소설가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중 <요요>를 소개했다. 그리고선 해당 작품에 대한 소감문을 작성하는 과제를 내어 주셨다. 나는 저녁식사를 건너뛰고선 조용히 교실에 혼자 앉아 유심히 글을 읽었다. 부모님의 이혼. 독립 시계 제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며 재회하는 주인공.


    내 일상과 매우 다른 주인공에게서 이상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도, 나도 혼자였다.

    



    소설 속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신중하게 만든 시계 이름을 그저 작품 제작 순서로 작명하는 주인공은 뜻깊은 만남을 하면서 시계마다 상징적인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시계 초침, 분침, 톱니바퀴 등 모든 부품을 신중하게 배치해야 돌아가는 시계처럼 관계도 신중함과 노력이 필요했다. 


        노력한다고 하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 하루는 특색 없이 흘러갔고, 내 기억에는 '혼자 있던 순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덩어리가 되었다.




    노력을 한다고 하면서 나는 결국 노력을 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난 후, 나는 1학년 때처럼 또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주변 친구들과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학교에서 생활한 것뿐이었고, 자유를 얻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 방구석에 박혀 있었다. 재미와 행복은 이미 내 일상에서 오래전에 잊혔다는 사실을 그때 알아차렸다.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그대로 누워 다음날 등교하기 전까지 매 순간 나의 한계를 인식했다. 가끔은 '모의고사 공부나 학교 활동을 다 포기하고 내신만 챙겼다면 그 학교에 합격했을까'라며 후회했고, '나 꽤 노력했는데 왜 나한테 그 기적은 없는 건가'하며 원망했고, 그러다 나만 바라보던 부모님을 원망하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절망하듯 자책했다.


    누구도 노력을 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자면, 그 시점이 바로 나의 한계였다. 아플 때 주저앉는 그 순간에 나의 성공의 기회는 점차 날아가고 있었고, 나는 도저히 나의 부서질듯한 체력까지 극복하지 못했다. 세 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만, 한 시간만 자면서 공부했다면 성공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하며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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