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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Mar 19. 2022

나와 함께 삽시다

고등학교 20 | 고등학교 기록을 남기면서

    드디어 계획했던 모든 기록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대략 2개월 정도 걸렸네요. 브런치에 합격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기록이 아닌 서울과 대학교에서의 이야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고등학교 이야기가 없다면 서울에서의 이야기를 설명하지 못할 부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리고 그 일들이 점점 쌓여 '이럴 바엔 그냥 고등학교 이야기도 주-욱 한편 지필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글들에서는 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유롭게 감정을 풀어 글을 적어 내려갔다면 이 분량의 두 배 정도는 될 겁니다. 참 순탄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수학과 과학에 무한한 관심을 보이는 제가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한 그 자체로도 이미 무언가를 거역했으니까요.


    무교인 저는 여기서 '아담'과 '이브'를 떠올립니다. 신이 왜 이 두 '사람'이 불충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강력하게 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아마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제 고등학교 생활도 그랬습니다. <서울로의 대학 진학> 외에는 별 관심이 없으셨던 부모님과, <평일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규정 덕분에 제 행동 어느 것도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았습니다. 


    그 환경에서 저는 새로운 본인을 만났습니다. 사교성 많고 활달한 저의 모습보다 과묵하고 씩씩한 사람이 저에게는 더 필요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모습보다는 어른스럽게 이끌어가는 제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 모습들이 모여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싶은가요. 당연히 불가능하죠. 그러나 저에게는 가능 여부를 판단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의 평화로운 자유의지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께서 제가 서울 내 대학에 진학할 거라고 믿으셨다는 겁니다. 유일한 조건 하나를 지키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찾아오자 일단 위태롭더라도 무엇이든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불안함이 커져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 지나더라도 휘청거릴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요. 원하던 대학, 원하던 공부를 하는 대신에 과거의 제 모습을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성격은 많이 돌아왔지만 몸이 많이 지쳐버렸거든요.




    지금은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본 전공이자 제가 사랑하는 학문인 사회학은 이미 수료한 지 오래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외부활동이 전면 차단되자 할 수 있는 건 집구석에서 논문 읽고, 다 읽으면 책 읽고, 그것도 다 읽으면 강의 더 보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게다가 통학이 어렵고, 오래 앉아 있기 힘든 저에게 비대면 학사 운영은 공부(만) 하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었습니다. 물론 대학생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해서 또 많이 우울했습니다. 


   눈치를 채셨다면 제가 휴학 한 번 없이 지금까지 공부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네, 서울 내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돈이 듭니다. 서울 3년 살면서 3번 이사할 정도로 부모님께서 부담을 점점 느끼고 계시거든요. 그리고 굳이 서울에서 무언가를 더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편 스포 주의) 1학년 때부터 이미 대외활동과 인턴, 공모전을 경험했고 "1학년인데 벌써부터 하는 거야?"라는 말은 2년 전부터 "너 선견지명 대박"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특히 환경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학교에는 해당 학부가 있지 않았죠. 이를 확인한 1학년인 저는 재빨리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환경 관련 대외활동을 하며 환경학 박사분들의 강의를 들었고, 제가 가장 관심이 많았던 개발도상국의 환경시설에 대해서는 아예 개발도상국의 환경공학자분들이 참여하시는 연수 과정에 통역하는 업무에 지원해서 공학자분들과 10일 넘게 대한민국 곳곳의 환경시설을 견학하며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저를 사랑하는 학문만을 공부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졸업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사회학 강의를 듣거나 다른 학부에 이중전공을 신청하여 공부해야 했죠. 마침 저희 학교는 복수전공 심사가 까다롭습니다.(?) 학부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문과 계열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경영학과 소프트웨어학과는 학점이 4.45 정도가 돼야 복수전공 신청을 허가하셨습니다. 그렇게 각기 다른 학생들이 대부분 경영학과 소프트웨어학과에만 복수전공을 선택하는 현상도 놀라웠는데 합격 커트라인으로 학점 4.45라는 정보는 헛웃음만 나오더라고요.  다행히 저는 경영학과 소프트웨어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수년간 자기 주도 학습에 단련되어 있는 저에게 이런 유명한 학문들은 알음알음 스스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취직을 생각해봐도 학위 취득의 중요함을 느끼지 못했으니 복수전공으로 신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사회학으로 다져놓은 제 사고에 법학, 경제학, 광고홍보학이 머물다가 이제는 전자전기공학부가 있습니다. 왜 공학을 공부하냐고 묻는다면 사회학과 대척점에 있(다고 사료되)는 학문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원래는 환경학을 배우려고 했어요. 저는 그저 우리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사회학도 그런 흐름이었죠. 사회학으로 접하지 못한 학문을 찾기 어렵습니다. 국내외 정서는 당연하고요, 상경 계열, 다른 사회과학계열, 인문 계열에 의학 계열까지 접했습니다. 어라 뭐가 없죠? 맞습니다. 공학을 배워본 적은 없었어요.


    저희 학교 학부 역사상 전기전자공학부 복수 전공생은 제가 최초라고 합니다. 영광이긴 보다는, 왜 다들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곱씹어봅시다.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요. 이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물리와 미적분을 정말 잘해야 합니다. 다행히 외국어고등학교에도 과학 과목이 있습니다. 화학, 물리, 생명과학, 지구과학을 조금씩 배웠는데요. 놀랍고 다행히도 그중에서 물리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수학 과목 중에서는 미적분이 제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둘을 접합한 대표적인 학문은 바로 '전자전기공학'이었습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죠. 언젠가 전기공학을 공부해서 제가 누린 행복을 누군가에게 전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 그걸 꼭 해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저는 다른 대학생과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멋진 문화생활을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였죠. 별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전인 2019년, 제가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서울에서만 열리는 뮤지컬, 연극을 조금이라도 즐겼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은 오로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제 선택이었습니다. 취업을 생각했다면 대입 당시에 소프트웨어학부나 경영학과로 지원했을 겁니다. 저도 취업 잘 알죠. 


    그러나 저는 공부하면서 취업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경영학부 복수전공 지원을 고민하는 제 모습에서 고등학교 2학년 당시가 떠올랐거든요. 하기 싫어도 다들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만 충실하게 따라가는 제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무너졌습니다. 또 이렇게 제가 배제된 선택을 해서 무너지면 과연 지금 제 상태로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요. 


    처음에 부모님은 제가 서울로 올라간 후부터 취업에 대해 자주 물으셨습니다. 주변에서 지역 인근 대학이 아닌 대학을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거든요. 있다고 해도 저와 10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거나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는 탓에 요즘 대학생들이 한 번은 한다는 휴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대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한 후 바로 취업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히셨던 부모님께서는 대학교 3학년인 제가 얼마나 다급해 보이셨을까요.


    그래서 저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취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휴학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대학 4년간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겠다. 부모님은 승낙하셨습니다. "그래 네가 어련히 잘하겠지"라는 말을 또 하시면서요.




    취업 생각 없이 전자전기공학을 공부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해. 저도 줄곧 이해하는 삶을 살아서 어느 정도 잘 압니다. 조금 나서보자면 이런 상황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고개만 끄덕거리면 됩니다. 그러면 저는 "원래 내가 그래"라며 답하겠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척)하는 경우도 필요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어리석다고 합니다. 근데 더 이상 현명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게 맞습니다. 저 자신이 없는 삶을 이제는 피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았잖아요. 그리고 어느 것을 해도 저는 열심히 할 거니까 우리 이런 결정은 내릴 수 있잖아요.


    나보고 '어리석다'라고 말한 친구. 친구를 바라보는 나. 둘은 그 자리에서 피식 웃었습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라는 세상의 명령에도 신나게 오솔길로 빠져 흙을 밟으며 걸어가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렇게 살 겁니다. 


    나와 함께 삽시다. 우리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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